4대 금융그룹. 사진=각사
4대 금융그룹. 사진=각사

'금융라떼'는 2000년대 전후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흐름을 키워드 중심으로 알기쉽게 정리해주는 섹션입니다. 금융시장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련업종 취업을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쉽게 접하는 은행 등에 대한 과거사를 알고 거래한다면 나름 쏠쏠한 재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섹션의 특성 상 다소 '꼰대'스런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회장님(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버젓이 걸려 있는데 담당 부서에서 협조를 해주겠습니까" 

"포털(네이버)에 송출되는 언론사 관리하기도 버겁습니다. 신규 매체는 들여다볼 여력이 없어요"

나름의 소신을 갖고 소형 매체에 둥지를 튼 기자로서 요즘처럼 자괴감에 허우적거린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번 [금융라떼]는 20여년 금융(주로 은행) 기자로 활동해온 저의 속내를 좀 꺼내볼까 합니다.

군 제대 이후 20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었던 2006년 국내 은행권과 지금의 은행권은 표면적으로 보기엔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당시도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체제였고, 지금도 해당 은행의 지주사인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 중심의 경쟁구도가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하나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그리고 민영화 과정에서 계열사들이 줄줄이 매각되면서 우리은행의 덩치가 쪼그라든 것이 나름의 변화라면 변화겠습니다. 이 때문에 3, 4위권의 순위 변동도 생겼네요.

이후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시중은행들이 큰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과거 IMF 사태의 교훈 덕분이었을까요? 미국 등 다른 나라 은행권과 비교해 국내은행의 기초체력과 회복 탄력성은 양호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대내외 시장 불안에 따른 실적 부침과 조 단위의 사모펀드 손실 사태, 정권 교체기마다 겪었던 관치금융 논란은 은행들이 받아들어야 할 숙명이었죠. 

물론 각 은행의 전통과 역사에 큰 획이 될 만한 사건·사고는 존재했습니다.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각각 'KB사태'와 '신한사태'로 일컬어지는 경영진 내분 사태가 있었고, 우리금융지주는 계열사가 줄줄이 매각되는 고육책 이후 정부의 그늘 하에서 벗어난지 불과 수년입니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전임 회장인 김승유·김정태 회장 등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 여당과의 정금(政金) 유착 논란에 한바탕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죠.   

이처럼 표면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던 은행권과 달리 언론 환경은 갈수록 악화일로였습니다. 언론사 창간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중소형 매체들이 급격히 늘어난거죠. 이 과정에서 기사 소비가 주로 포털(네이버·다음·구글)에서 이뤄지면서 언론사들의 명운이 포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됐습니다.  

단적인 사례로 2010년 초반만 하더라도 시중은행을 출입처로 한 기자들은 30~40명 안팎이었던 것과 달리, 현재는 200여명이 넘는다고 하니 어떤 산업도 언론시장의 성장세에 비할바는 아닐 듯 합니다.

부끄럽지만 당시만 해도 기자는 '갑질'의 대명사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부정적 논조의 기사를 활용해 광고 압박에 나서기도 했고, 출입처 직원을 강제로 불러내 행사·술자리 등에 합석시키는 일도 비일비재 했죠. 물론 이런 사례는 모든 언론사들에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마다 사명감을 갖고 기사를 쓰는 기자와 그런 기자를 우대해주는 언론사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지금은, 일말의 사명감마저도 기자들에게는 '사치'가 돼버렸습니다. 행여라도 그런 사치를 부리면 당장 '광고 중단' 압박이 직면하게 되니 언론사들로서는 해당 기사를 삭제(혹은 수정)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언론사들은 광고주에 대한 충성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물론 이런 환경이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닙니다. 과거 삼성그룹 등의 진보신문 길들이기는 한참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당시만 해도 계란으로 바위를 칠 지언정 사명감을 지키려는 언론사들이 꽤 있었지만, 작금의 언론 환경에서 자존심은 곧 '자멸'로까지 인식되는 상황으로까지 몰렸습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설령 일부 부정적 기사가 나온다 한들 광고로 길들인 인터넷 언론사들을 동원해 보기싫은 기사는 포털 첫 페이지에서 밀어내면 그만이죠. 

특히 은행들은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 등 CEO(최고경영자) 기사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대주주가 명확한 재벌기업들과 달리 은행 CEO들은 2~3년의 경영성과로 연임 여부가 결정되다 보니 CEO에 대한 부정적 기사는 앞뒤 안가리고 없애는 일이 은행 홍보실의 주된 업무가 된거죠.  

일례로 과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하나금융 홍보실을 'JT(김정태 전 회장) 친위대'라 불렸던 전례도 하나금융만의 다소 '과격한' 언론사 길들이기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찌 보면 언론사들이 늘어나면서 기자와 출입처 간의 갑을 관계가 완전히 뒤바뀐 거죠. 

[금융 라떼]의 당초 기획 의도와는 달리 언론 환경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이 역시 은행권 홍보조직의 산 역사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보고자 합니다. 

끝으로 나랏님도 바꾸기 어렵다지만 언론사들이 포털 중심의 고착화된 환경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고, 나아가 언젠가는 사명감이 묻어나는 기사와 콘텐츠가 보다 인정받을 수 있는 언론 환경이 구축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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