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하나은행
사진=하나은행

'금융라떼'는 2000년대 전후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흐름을 키워드 중심으로 알기쉽게 정리해주는 섹션입니다. 금융시장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련업종 취업을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쉽게 접하는 은행 등에 대한 과거사를 알고 거래한다면 나름 쏠쏠한 재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섹션의 특성 상 다소 '꼰대'스런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국내 금융권, 그 가운데서도 시중은행은 업(業)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보수적 조직문화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은행 조직문화를 상명하복식 군대 문화에 빗댈 정도였죠. 이런 배경에서인지 당시 은행들은 채용 시 장교 출신들을 우대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은행권의 보수적 조직문화는 업의 특수성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다루는 일이 본업이다 보니 개개인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위계질서를 명확히 확립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일례로 시중은행 영업점의 경우 오후 네시면 대고객 영업을 종료하지만, '진짜' 업무는 이 때부터라고 합니다. 하루 시재(입출금)를 '0'으로 맞추는 작업이죠. 단 1원이라도 맞지 않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거래 자금의 전부를 일일이 추적해야 합니다. 수십년 경력의 은행원들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현재 KB국민은행<9to6>과 신한은행<이브닝플러스> 등은 영업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한 특화 영업점을 운영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긴장된 분위기에서도 금전사고는 매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에서 발생한 사고는 210건, 액수는 무려 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에 각 은행들은 저마다 직원 윤리교육과 함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지만,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원천적으로 사고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런 은행권에서 최근 확산하는 트렌드가 있습니다. 바로 '호칭 파괴' 바람입니다. 소위 '혁신'으로 무장한 카카오·케이·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배우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현재 이들 3사는 외국계 기업처럼 직함 없이 영어 이름과 '○○님'으로 호칭을 일원화해 사용 중입니다. 은행장마저 그냥 '대니얼(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로 불린다고 하니 참신한 문화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형 시중은행 가운데서는 2020년 신한은행이 호칭 파괴 실험에 나섰습니다. 기존의 주임, 대리 직급은 '매니저'와 '프로' 등으로, 관리자급인 부부장 이상은 '수석' 등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기존 행원-대리-과장-차장-부부장-부장(지점장)-본부장-임원(부행장) 등으로 이어지는 복잡하고 수직적 체계를 점차 단순화시키겠다는 복안으로 읽힙니다.

비슷한 시기 하나은행도 영어 호칭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하나금융그룹은 그룹 공지를 통해 하나은행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에 영어 닉네임 사용을 권고하기도 했죠.

가장 최근에는 지방은행인 BNK경남은행이 호칭 파괴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부서장급을 '리더'로, 그 외 직원을 모두 '매니저'로 통일시켰다고 하니 호칭 파괴 실험에 한발 더 나아갔다는 평가가 나올법 합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의 호칭 파괴 시도는 꼭 인터넷전문은행이 원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나은행의 선례는 카카오뱅크가 출범했던 2017년보다 무려 10년 가까이 앞서 있기 때문이죠.

바로 JT(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난 2008년 하나은행장에 취임한 김 전 회장은 직원들에게 자신을 'JT'로 불러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기존 은행장실도 자신의 영문 이니셜을 활용해 JT(Joy Together)로 바꿨고 언제든 자신의 방에 찾아와줄 것을 당부했었죠.

은행 내 대표 영업통(通)으로서, '영업하는 직원들이 즐거워야 회사도 발전한다'는 취지가 담겼었습니다. 지금보다 보수적 문화가 강했던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파격적인 행보였죠. 참고도 당시 하나은행은 은행장 이름을 딴 '조이 투게더(Joy Together) 특판예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조이투게더 특판 보도자료
사진=조이투게더 특판 보도자료

이런 선례를 감안하면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은 비단 수년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호칭 파괴에 앞서 시중은행들은 자율복장제 도입를 통해 각 은행을 상징했던 '유니폼'마저 과감히 버렸으니 말이죠. 물론 은행들의 이런 시도는 창의적 조직문화를 위한 생존 차원의 고육책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 의구심이 가라앉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호칭 파괴 이후 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직원들은 기존 직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굳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듯 합니다.

안착 여부를 떠나 호칭 파괴가 '수평적→자율적→창의적' 조직문화를 담보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변화를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가 곧 생존과 직결되는 IT기업들에게 수평적 조직문화가 지속성장을 위한 필수 요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업은 무엇보다 '고객 신뢰'를 금과옥조로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업종입니다. 이런 은행이 보수적 조직문화를 꼭 부정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도 일견 듭니다. 마치 시중은행의 롤모델마냥 인식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10년도 채 안된 '실험적' 은행이라는 사실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뉴스w]

저작권자 © 뻔하지 않은 뻔뻔한 뉴스-뉴스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