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사진=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금융라떼'는 2000년대 전후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흐름을 키워드 중심으로 알기쉽게 정리해주는 섹션입니다. 금융시장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련업종 취업을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쉽게 접하는 은행 등에 대한 과거사를 알고 거래한다면 나름 쏠쏠한 재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섹션의 특성 상 다소 '꼰대'스런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국내 금융권 이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리딩금융'이란 단어가 주는 생소함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위 '영끌' 대출이 유행처럼 번졌던 전례를 감안하면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대출금리 등 은행권 소식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리딩뱅크'와 '리딩금융'의 차이는 뭘까요? 은행주에 관심이 있는 주식투자자라면 둘의 차이는 금방 알아차릴 듯 합니다. 리딩뱅크는 국내 최대 은행을, 리딩금융은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계 금융그룹을 일컫는 말입니다. 현 시점에서 국내 리딩뱅크과 리딩금융은 각각 KB국민은행과 KB금융지주로 인식되는데 KB국민은행에 투자하고 싶다면 KB금융지주 주식을 사면 됩니다. 

그렇다면 '리딩(Leading)'을 결정짓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제조·유통 기업들의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이 업종 내 순위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지만 은행의 경우 순이익이 이를 대신합니다. 은행계 그룹사 가운데선 KB금융이, 시중은행 중에선 KB국민은행이 순이익 규모에서 1등이라는 얘기죠.

물론 KB금융이 줄곧 리딩금융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16년까지만 해도 무려 10년 이상 신한금융지주의 독주 체제가 이어졌습니다.  

은행계 금융지주 역사는 2001년 신한은행의 첫 지주사 전환 이후, 2005년 하나금융지주(하나은행), 2008년 KB금융지주(KB국민은행), 2012년 농협금융지주(NH농협은행)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금융(우리은행)이 2019년 지주사 전환을 통해 이른바 '5대 금융'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죠. 참고로 우리금융은 과거 그룹사 체제를 유지했지만 민영화 과정에서 옛 우리투자증권 등 주력 계열사가 매각되면서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 때 자산 규모에서 1, 2위를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나금융에 이어 4위로 밀려난 상태죠. 

경쟁사에 비해 KB금융의 지주사 전환이 늦어진 배경은 주력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의 수익 기여도가 90% 이상으로 절대적이었던 탓입니다. 신한금융의 경우 옛 굿모닝증권과 LG카드 인수 이후 신한카드가 업계 1위로 올라서는 등 비은행 부문을 별도 계열사로 분사해 키울 필요성이 커졌죠. 신한금융의 이같은 전략은 적중했고 10년 이상 1위 금융그룹이라는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신한금융의 독주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윤종규호(號) KB금융이 들어선 이후입니다. 지난 2014년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에 취임한 윤종규 전 회장은 내분 사태(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의 후유증 극복 직후 '리딩뱅크 탈환'을 임기 중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이후 KB금융은 옛 현대증권(KB증권)과 LIG손해보험(KB손해보험), 푸르덴셜생명(KB라이프생명) 등을 인수하며 괄목할 만한 외형 성장을 이끌었죠.

이후 KB금융과 신한금융은 매 분기마다 1등 자리를 놓고 수성과 탈환을 반복해 왔습니다. 자회사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역시 리딩뱅크를 놓고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쳤죠. 

현재는 KB가 리딩 컴퍼니로 인식되고는 있지만, 사실 KB금융과 신한금융 간 선두 경쟁은 난형난제입니다. 지난해 순이익만 보더라도 KB금융은 4조6400억원, 신한금융은 4조4000억원으로 격차가 2000억원에 불과합니다. 3위인 하나금융(3조5000억원)과는 1조원 가까이 차이나는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공동 1위라 해도 무방할 정도죠. 지난 2020년에는 두 지주사의 순이익 격차가 400억원에 불과하기도 했습니다. 부실채권 발생에 대비해 쌓는 대손충당금의 일부만 손본다면 언제든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수준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금융지주도 '리딩'을 향한 집착(?)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듯 보입니다. 신한금융은 최근 수년간 국내 경쟁을 넘어선 '일류(一流) 신한'을 성장 기치로 내걸고 있고, 지난해 말 윤 전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양종희 KB금융 회장도 취임 일성으로 리딩금융다운 '모범적 금융'을 강조했습니다.

국내 은행간 치열한 순위 경쟁이 가계부채 과잉을 비롯해 사모펀드 사태, ELS 손실 등 각종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금융당국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역대급 이자이익에 기인한 실적잔치, 성과급 잔치, '종 노릇' 등으로 정치권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매를 먼저 맞을 필요는 없을테죠.

그렇다고 20년 이상 이어져온 리딩금융 경쟁의 명맥이 끊어질리도 만무해 보입니다. 은행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기는 했지만, 시중은행들은 엄연히 민간 주주의 자본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이기 때문이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시중은행들은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상장사로서의 정체성과 사회환원을 강요받는 공공성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 : 은행 공공성 발원, '조상제한서'를 아시나요? https://www.newsw.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5)

다사다난했던 2023년을 떠나보낸 은행원들로서는 2024년 올 한해가 과거 여느 해보다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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