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4대 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사진=4대 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금융라떼'는 2000년대 전후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흐름을 키워드 중심으로 알기쉽게 정리해주는 섹션입니다. 금융시장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련업종 취업을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쉽게 접하는 은행 등에 대한 과거사를 알고 거래한다면 나름 쏠쏠한 재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섹션의 특성 상 다소 '꼰대'스런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올해 연임 도전에 나서는 미국의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올해로 만 81세를 맞았습니다. 취임 당시 74세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80세를 앞두고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죠.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나이에 특별한 상한을 두지 않습니다. 임기 중 건강 리스크가 불거질 개연성은 배제하기 어렵지만, 오랜 정치 경력과 연륜이 국정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겠죠. 참고로 2030세대의 정치 참여가 늘면서 만 40세로 묶여있는 대통령 선거 하한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처럼 대통령도 없는 나이제한이 국내 4대 금융지주에는 존재합니다. 현재 KB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은 대표이사 회장 자격 요건을 만 70세로 제한하고 있고, 신한금융그룹의 경우 만 67세로 허들이 더 높습니다. 뒤늦게 우리금융그룹도 회장 선출에 나이(70세) 제한을 두기로 했습니다.  

이같은 나이 규정은 '장기집권'의 폐해를 막고자 도입됐는데, 그 역사는 이명박 정부(2008~2013년) 시절로 거슬러 오릅니다. 당시 4대 금융그룹에는 '왕의 남자'라 불렸던 강만수 회장(산은금융지주)을 비롯해 어윤대 회장(KB금융지주), 김승유 회장(하나금융지주), 이팔성 회장(우리금융지주) 등 금융권 '4대 천황'이 금융권을 호령(?)하던 때입니다.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이기도 했던 강 전 회장은 '리만 브라더스'로 불릴 정도로 이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고, 어윤대·김승유·이팔성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의 학연(고려대)을 연결고리로 저마다 끈끈함을 과시했었죠. 

지금의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이른바 4대 금융그룹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신한금융지주가 '천황' 호칭에서 비켜서 있었는데, 정치적 연유에서였을까요? 공교롭게도 나이 제한의 단초를 제공한 곳은 바로 신한금융이었습니다.

당시 4연임을 통해 10년 가까이 회장 자리를 지켰던 라응찬 전 회장(1938년생)은 후임 인선을 앞두고 지난 2010년 신한은행장(이백순)과 함께 그룹 2인자였던 신상훈 전 사장을 고소하면서 이른바 '신한 (내분)사태'가 촉발됐습니다. 라 전 회장의 당시 나이는 만 71세였죠. 

이후 신한금융 안팎에서는 내분 사태의 원인을 그룹 회장의 '장기집권'에서 찾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각 금융그룹은 각 사 정관에 대표이사 회장의 나이 규정을 두게 됐습니다. 이후 라 전 회장은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검찰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아 다양한 뒷말을 낳기도 했죠. 참고로 신한은행 법인과 신 전 사장은 사태 발발 13년만인 지난해 10월 전격 화해하기로 하면서 관련 소송전은 사실상 종결됐습니다.

사실 당시 4대 천황이었던 강만수(1945년생), 어윤대(1945년생), 김승유(1943년생), 이팔성(1944년생) 전 회장 역시 만 60세를 훌쩍 넘어선 상태에서 회장직에 선임되면서 국내 금융지주가 MB맨(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올드보이'의 놀이터냐는 지적이 제기됐던 터입니다.   

이로 인해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하나금융을 국내 4대 금융그룹으로 이끈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역시 3연임을 끝으로 2012년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나금융의 외환은행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론스타 먹튀' 논란은 2022년 말 우리 정부에 대한 수천억원대 국제투자분쟁(ISDS) 배상 판결로 또다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죠.

이후에도 하나금융의 경우 김승유 회장의 후임인 김정태 전 회장(1952년생)의 4연임 과정에서 정관 일부를 손봐 임기 연장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추가 임기 1년만인 만 70세 직전에 함영주 현 회장에게 바통을 넘겨줬습니다.

하나금융그룹의 정관 '이사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사항' 제 10조(이사 선임의 절차 및 임기)는 "이사의 재임 연령은 만 70세까지로 하되, 재임 중 만 70세가 도래하는 경우 최종 임기는 해당일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정기주주총회일까지로 한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신규 선임이든 연임이든 만 70세가 넘으면 회장직 도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관에 못박아둔 것이죠.

공교롭게도 함 회장(1956년생) 역시 올해 만 67세로 임기가 만료되는 2025년에는 만 68세가 됩니다. 온전한 연임(3년)은 힘들지만 김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정관 상 추가 임기는 가능해 보입니다.

다만 금융지주의 회장의 '셀프연임'을 비판하며 지배구조 모범관행까지 제시한 금융당국의 최근 움직임을 감안하면 연임 도전이 쉽지 않아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같은 전례에 비춰 금융지주 회장의 나이 제한을 통해 장기집권의 폐해를 막겠다는 취지에는 일면 공감합니다. 하지만 대통령도 없는 나이 제한을 민간 금융사 정관에 버젓히 적시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은 여전합니다. 

'관치금융'의 직접적 폐해를 겪고 있음에도 회장직 승계만큼은 금융지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 20여년간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 금융그룹들이 이제는 관치금융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여전히 성급한 기대일까요.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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