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우리금융그룹
사진=우리금융그룹

'금융라떼'는 2000년대 전후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흐름을 키워드 중심으로 알기쉽게 정리해주는 섹션입니다. 금융시장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련업종 취업을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쉽게 접하는 은행 등에 대한 과거사를 알고 거래한다면 나름 쏠쏠한 재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섹션의 특성 상 다소 '꼰대'스런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요즘 우리금융그룹의 내부 분위기를 보면 단단히 '칼'을 갈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진짜 칼(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간의 과오와 실적부진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임직원 모두가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분위기의 초입은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입인 듯 합니다. 임 회장은 올해 첫  CEO 메시지인 신년사에서 2024년 경영목표를 '선도 금융그룹 도약'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핵심사업에 대한 경쟁력 강화 및 미래 성장기반 확보, 그룹 계열사간 시너지 강화와 함께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강조했습니다. 

사실 리스크 관리와 양적 성장은 각각 상반된 경영전략을 필요로 하지만, 대다수 기업 CEO들이 그렇듯 '두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 싶다'는 기대가 투영된 목표 쯤으로 해석하면 될듯 합니다.

이에 더해 임 회장은 올해 첫 경영전략회의에서 부진했던 지난해 실적을 언급하며 '올해 성적표는 온전히 자신과 그룹 경영진의 책임'이라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참고로 최근 우리금융은 직전년과 비교해 20%나 뒷걸음질 친 2023년 경영성적표(순이익 2.5조원)를 공개했습니다. 3.5조원을 기록한 하나금융그룹과 '빅 3' 경쟁에서도 크게 뒤쳐진거죠.

임 회장의 질책 탓이었을까요. 뒤이어 개최된 우리은행의 경영전략회의에서 '시중은행 1위'라는 목표가 등장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임직원들을 향해 "1등 은행을 경험해본 저력과 자부심을 발휘해 정말 놀라운, 가슴이 뛰는 우리의 해를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습니다.

당장 국내 4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경쟁구도는 물론 NH농협은행을 포함해 5대은행 구도에서도 꼴찌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은행에게는 다소 무리한 목표가 아니냐는 관전평이 나옵니다.

하지만 조 행장의 언급처럼 우리은행은 총자산 및 순이익에서도 선두권을 다투던 시절이 있긴 했습니다. 지난 2004~2007년 '검투사'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겸 우리은행장) 시절이었죠. 지금의 차·부장 이상 관리자급 직원 상당수가 우리금융 및 우리은행의 전성기 시절로 꼽고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 우리은행을 주거래로 했던 삼성그룹 출신이기도 했던 황 전 회장은 여느 전·현직 CEO와 비교해도 강력한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입니다. 검투사도 호전적인 성향과 함께, 영업 현장을 총괄하는 임원들에게 '단검이 든 지휘봉'을 선물하면서 생겨난 별칭이었죠. 영업현장의 책임자는 '전장에서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황 전 회장이 주로 언급했던 '금융대전(大戰)'이라는 말도 그의 경영 스타일을 가늠케 합니다. 황 전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1년여 만에 KB금융그룹 회장으로 복귀하는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우리금융 회장 시절 금융권 영업대전을 이끈 리더십을 인정받았던 거죠.

하지만 화려해 보였던 황 전 회장의 유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KB금융 회장 취임 1년도 안돼 우리은행장 시절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에 따른 '배임' 혐의로 고소를 당한 거죠. 당시 우리은행은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및 부채담보부증권(CDO) 투자 손실로 인해 1조원을 넘어서는 역대급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해당 사고로 황 전 회장은 금융당국과 대립각을 세웠고 결국 1년여만에 KB금융 회장직에서 물러났죠. 지루한 소송전 끝에 황 전 회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검투사의 그림자'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KB금융 역시 황 전 회장 시절 인수했던 카자흐스탄 BCC(센터크레디트은행)가 1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면서 곤욕을 치뤄야 했습니다.    

다만, 경영 실패의 온전한 책임을 CEO 한 사람에게 돌리기는 쉽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CDO·CDS 손실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환경에 기인한 측면도 큽니다.

이같은 대규모 손실 사태가 비단 우리금융에 국한된 문제도 아닙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라임·옵티머스, DLS(파생결합증권) 등의 사모펀드 손실 사태도 정부의 규제 완화와 업계의 과당경쟁이 맞물려 불거진 사태였고, 올 들어 본격화되는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 역시 비이자 수익 경쟁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KB금융그룹을 1위 금융그룹으로 이끌며 취임 때 공언했던 '리딩뱅크 탈환' 약속을 지키고 떠난 윤종규 전 회장의 경우 뛰어난 재무분석 능력과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업무 스타일로 '윤주임'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지만, 그마저도 ELS 사태에서는 비켜서지 못했습니다.  

물론, 과거 20년 가까이 관료 출신 낙하산 CEO로 몸살을 앓아온데다, '완전 민영화'를 이끈 내부 출신 손태승 전 회장마저 불명예로 퇴진한 우리금융으로서는 '검투사 시절'이 그리울 법도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순위에 집착한 '공격 경영'의 말로는 대규모 '손실 사태'였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금융사와 고객, 그리고 남겨진 조직원들이 감당했어야 했다는 거죠.  

우리은행 측 설명대로 소비자 선택권 보호의 일환인지, 아니면 공격경영의 일환인지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우리은행은 4대 은행 가운데 나홀로 ELS를 판매 중입니다. H지수 ELS 판매고가 적다는 이유로 리스크 관리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칩니다.

'삼척장검'이 될지, 아니면 '견문발검'일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만약 과거와 같은 공격적 영업관행을 부활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좀더 신중하고 정제된 CEO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일견 듭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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