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왼쪽)과 이승열 하나은행장. 사진=하나금융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왼쪽)과 이승열 하나은행장. 사진=하나금융

'금융라떼'는 2000년대 전후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흐름을 키워드 중심으로 알기쉽게 정리해주는 섹션입니다. 금융시장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련업종 취업을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쉽게 접하는 은행 등에 대한 과거사를 알고 거래한다면 나름 쏠쏠한 재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섹션의 특성 상 다소 '꼰대'스런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하나금융그룹의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이 돌연 하나금융지주 비상임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는 거죠.  

일단 그룹의 2인자로 인식돼온 이승열 하나은행장의 입지가 쪼그라들면서 함영주 회장 1인 체제가 그만큼 더 공고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행장의 등기이사직 사임이 자칫 후계구도 줄세우기로 비춰질 수도 있어 보입니다. 벌써부터 내년 3월 함 회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새롭게 오를 비상임이사에 그룹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하나금융은 금융계의 군(軍) 조직라는 세평이 나올 정도로 '충성'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유명세를 타왔습니다. 이런 문화가 정착된 배경에는 하나금융의 성장 과정에서 일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나금융지주의 모태인 하나은행의 역사는 지난 1971년으로 거슬러 오릅니다. '한국투자금융'이라는 단기금융회사, 소위 '단자 회사'로 영업을 개시했던 하나금융은 1990년대 들어 정부의 금융정책 변화에 기대 '은행 변신'에 성공합니다. 20년 가까이 어음 융통이나 하던 단자회사가 갑작스럽게 은행 타이틀을 달았으니 '사채업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것은 당연지사였겠죠.

당시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중심의 5대 은행 체제에서 존재감도 미미했습니다. (관련 기사 : [금융라떼] 은행 공공성 발원, '조상제한서'를 아시나요? https://www.newsw.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5)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부실은행으로 전락한 옛 충청은행과 보람은행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대전·충남지역에서의 입지가 강화됐고, 이후 2002년 서울은행과 합병하면서 전국구 은행으로 재탄생하게 된거죠. 참고로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역시 자신의 연고지인 충청영업그룹 부행장 등을 지내면서 그룹내 '영업통'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처럼 단자 회사가 전국구 은행으로 변신해온 과정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죠. 김 전 회장은 1971년 한국투자금융 설립부터 은행 전환, 충청·보람은행 인수, 그리고 하나금융의 최대 숙원과제였던 옛 외환은행 인수까지 이뤄낸 입지전적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론스타 사태'와 '하나고 특혜' 등 갖은 논란의 중심 인물이기도 합니다.

후계자 육성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당초 한국투자금융부터 함께했던 김종열 전 사장이 뒤를 이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김 전 회장이 외부에서 후임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돌연 자진사퇴를 결정했습니다. 

당시 금융시장 환경과 정치적 배경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경쟁 은행과 달리 단자회사를 모태로 하는 만큼 '믿을만한 복심(腹心)'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계구도의 공백을 틈타 급부상한 인물이 바로 김정태 전 회장이었죠. 하지만 김정태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자신의 친정체제를 강화했고, 이후 자립형사립고인 하나고 특혜 논란에서도 선을 긋자 서로 소원해졌다는 후문이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전례 때문이었을까요. 김정태 전 회장과 그 후계자인 함영주 현 회장은 주변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끈끈한 신뢰 관계를 자랑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비롯해 채용비리 등 각종 사건사고에 등장했던 인물은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자인 김정태 전 회장이 아닌 함영주 당시 하나은행장이었습니다. 재판 때마다 '회장님은 몰랐다'는 취지로 일관하면서 확고한 2인자 입지를 구축했고, 이 과정에서 대외·대관 담당 조직도 '함영주 구하기'에 총동원 돼 연일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했죠. 

사실 함 회장의 경우 스스로 '상고 출신, 시골 촌놈'으로 칭할 정도로 개인 이력만 보면 경쟁사 CEO들과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직함이 김 전 회장의 마음을 움직였던 게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결국 함 회장은 지난 2022년 3월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회장직에 올랐습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DLF(파생결합상품) 사태 및 채용비리 재판 등 리더십 공백을 야기할 수 있는 사법 리스크마저 극복한 셈이죠. 참고로 최근에는 함 회장의 행정소송 비용을 둘러싸고 하나은행이 변호사 선임비용을 대납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 하나금융은 자신들의 조직 정체성을 '멜팅팟(용광로)'에 비유했습니다. 여러 금융사 출신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재탄생한 만큼 '다양성'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거죠. '근본(根本)' 없는 조직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상쇄시키고자 했던 나름의 노력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가 비바람을 이겨내듯, 외풍과 내분을 차단할 수 있는 조직의 전제 조건은 '시스템 중심'의 견고한 조직문화입니다. 경쟁사인 우리금융그룹이 연일 '내부 개혁'을 외치고 있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죠. 

충성을 강요받는 1인 중심의 조직문화가 결국 큰 화를 불러왔던 전례는 국내 은행권에서도 이미 수차례였습니다. 이런 구태부터 과감히 청산해야 하나금융이 원하는 '진정한 리딩금융'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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