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주가 유독 저평가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한두해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워낙 오랜 이슈다 보니 양적 성장이 임계치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성장 정체론'부터, 해외가 아닌 국내에 치우쳐진 경쟁구도 탓이라는 '우물안 개구리론', 여기에 카카오·토스·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등장에 따른 '메기론'까지 은행주의 저평가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은 나름 설득력을 얻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도 은행주를 통해 목돈을 만질 생각은 없어 보인다. 특정 가격대에 매수와 매도 주문을 걸어놓으면 은행 이자보다 낫다는 신박한 투자법도 소개된다. 박스권 투자만이 유효하다는 의미의 '박스투자론'이다.

이같은 주가 부진 탓에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는 은행주지만, 해외투자자들에게는 의외로 인기가 많다.

은행 대장주인 KB금융지주의 외국인 보유율은 11일 기준 73%에 달하며,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도 외국인 보유 지분이 60%를 웃돈다. 이 정도면 무늬만 국내은행이라는 얘기가 나올법 하다. 그나마 우리금융지주(38%)만이 4대금융지주 가운데 외국인 주주 비율이 절반 이하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54%라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의 '은행주 사랑'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처럼 국내 은행주에 외국인투자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증시 전문가들은 은행주의 안정성을 주된 배경으로 꼽는다. 가격 급등락이 없다 보니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줄이기에 은행주만큼 제격인 주식은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배당주로서의 매력이 크다. 과거에는 연말 배당에 한정됐던 횟수도 점차 늘더니 이제는 분기마다 배당금을 준다. 거액의 자금을 굴리는 기관투자자의 경우 불확실성이 큰 매매 차익보다 안정적인 배당을 우선 순위로 꼽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은행주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행동주의 펀드로 알려진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11일 국내 7개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를 상대로 '합리적 자본배치 및 정상적 주주환원, 약속을 지킬 시간'이라는 제목의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온라인을 통해 국내 은행주의 저평가 해소를 위한 캠페인도 진행하며 행동주의 펀드로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해당 펀드는 이번 서한에서 2023년 결산 이사회에 앞서 결산배당 및 자사주 소각 등을 의결하고, 향후에도 주주환원 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4분기 IR(기업설명회)를 통해 공표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국내 은행주가 해외 은행에 비해 0.5~0.7배 낮은 PBR에 거래되는 만성적 저평가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는 곧 '국부 유출'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은행주 저평가의 배경으로는 후진적 지배구조와 함께, 은행들이 대출자산 증가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비효율적 자본배치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유독 높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대출자산 중심의 경쟁구도에서 비롯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서안의 핵심은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들에게 더 많이 돌려줘야 저평가 국면도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얼라인파트너스의 이런 주장은 앞서 언급한 성장 정체론과 우물안 개구리론을 뒷받침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저평가 요인이 있다. 바로 '관치금융론'이다. 국내은행의 경우 뚜렷한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정권 교체기마다 외풍에 휘둘리고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 등 CEO가 바뀌는 일이 반복돼 왔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금융당국의 눈치부터 살펴야 하고, 또 길어야 2~3년의 경영성과로 연임 여부를 평가받는 환경에서는 질적 성장을 위한 중장기 경영플랜이 제대로 나올리 만무하다. 

현 정부에서도 이자이익 증가로 인한 실적 급증을 이유로 '은행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상생금융' 압박으로 은행권이 마련한 2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안 등의 영향으로 은행주 배당이 쪼그라드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결국 관치금융의 종식, 즉 은행권에 대한 자율경영 보장이야말로 은행주 저평가를 해소하는 첫 단추일 수 있다는 얘기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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