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분쟁. 거창한 용어처럼 들리지만 모든 분쟁의 시작에는 계약서와 약관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계약서 또는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용어 해석이 모호해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면 합리적 거래가 가능합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민원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권익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수십, 수백여장에 달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소비자가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뉴스w는 소비자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순기능 역할을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쉽게 풀어 전달하겠습니다. 계약서 내용과 관련하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전문 기자들이 다각도로 취재해 명쾌한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컨트랙W는 'Contract knoW' 영문의 준말로 계약서를 알다 혹은 깨닫다는 뜻입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얼마 전 11만9900원을 주고 모바일 게임 최신 아이템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게임사가 갑자기 업데이트를 진행하면서 구입한 아이템 가치가 뚝 떨어졌습니다. 인게임 재화도 아니고 현금을 주고 산 건데 엄밀히 따지면 이 아이템 소유권은 저한테 있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게임사가 이렇게 마음대로 아이템 가치를 변경시켜 재산권을 침해해도 되는 걸까요?" 

이는 게임 커뮤니티 올라온 사례를 각색한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답은 슬프게도 'YES'다. 게임 아이템 가치가 오르든 떨어지든 유저들이 피해를 본다고 해도 현행법상 이를 제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

더 놀라운 것은 게임 유저들이 모두 알게모르게 이 내용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게임시장이 모바일 게임을 필두로 크게 성장하면서 유료 아이템 시장도 확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2년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이용자 1인당 한달 평균 과금 액수는 3만원에 이른다.

이용자들이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한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의 캐릭터를 화려하게 꾸미거나 조금 더 효율적으로 성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매 전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소유권이다. 예컨대 주택이나 자동차, 백화점, 할인마트 등에서 물품을 구입하면 구매자는 그 물품의 소유권을 보호받게 된다. 

하지만 게임 아이템은 현금을 주고 구입했다고 해도 게임사가 모든 소유권을 갖고 있다. 소유권이 없다보니 당연히 재산권 성립은 이뤄지지 않는다. 게임 아이템이 오르든 떨어지든 핵심 가치는 게임사에게 있다는 뜻이다.

대신 이용자가 구입한 것은 아이템 이용권이다. 이를 통해 게임 내에서 아이템을 사고 팔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 것.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될 수도 있겠지만 게임사들은 유저가 게임을 이용할 때부터 이 내용에 대한 동의를 얻고 서비스를 제공했다. 바로 게임 표준 약관이다.

이용자들은 회원가입 시 무조건 약관에 동의를 해야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약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대응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특히 이용자들은 십중팔구 약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동의한 후 게임을 시작하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인지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우는 희박하다.

그렇다면 소유권은 왜 게임사가 가지고 있는 것일까. 게임업계 맏형 '3N'이라고 불리는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의 최신 약관을 살펴봤다.

넥슨 약관. 사진=넥슨 홈페이지 캡처
넥슨 약관. 사진=넥슨 홈페이지 캡처

넥슨 통합 서비스 이용약관 17조 1항을 보면 회사가 제공하는 게임서비스 등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과 기타 지식재산권은 회사 또는 해당권리자가 보유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회원은 회사가 제공하는 게임서비스 이용과 관련해 회사가 정한 방법의 범위 내에서 해당 콘텐츠에 대한 이용권을 가진다고 적혀 있다. 

이용약관 24조에는 게임 내용의 변경, 밸런스 유지, 아이템 정책 등에 따라 기존 아이템 등의 기능 등을 변경하거나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엔씨소프트 약관. 사진=엔씨소프트 홈페이지 캡처
엔씨소프트 약관. 사진=엔씨소프트 홈페이지 캡처

엔씨소프트 ‘플레이 엔씨’ 이용약관 17조에도 게임서비스 내 회사가 제작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이나 기타 지식재산권은 회사의 소유라고 밝히고 있다. 또 회사는 회원에게 이를 게임서비스와 관련해 회사가 정한 조건 아래에서 이용할 수 있는 권한만을 부여한다고 돼 있다.

33조에는 회사는 회원이 게임서비스를 이용하며 기대하는 캐릭터, 경험치, 아이템 등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상실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며 게임서비스에 대한 취사선택 또는 이용으로 발생하는 손해 등에 대해 회사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책임이 면제된다고 적혀있다.

넷마블 약관. 사진=넷마블 홈페이지 캡처
넷마블 약관. 사진=넷마블 홈페이지 캡처

넷마블도 마찬가지다. 넷마블 PC 이용약관 22조에는 서비스 내 회사가 제작한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기타 지적재산권은 회사의 소유이며 회사는 서비스와 관련해 회원에게 회사가 정한 이용조건에 따라 게임이나 캐릭터, 게임 아이템, 게임머니, 사이버포인트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만을 부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모바일 이용약관 19조에도 회사가 제작한 서비스 내 모든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과 기타 지적재산권은 회사에 귀속한다고 명시돼 있다.

주목할 키워드는 소유, 지적재산권, 저작권, 사용권 등이다. 즉 이용자가 소유한 게임 아이템은 게임사의 지적재산권이 데이터 형태로 표현된 것이고 게임사가 이용자에게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해당 아이템에 대한 이용권을 갖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용자는 게임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구매하더라도 이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빌려서 이용한다는 것.

3N뿐만 아니라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 컴투스, 펄어비스 등 모든 게임사들이 이용약관에서 사용하는 세부적인 단어는 다를지라도 게임 내 제공되는 아이템이 게임사의 소유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큐브' 아이템 사용 전후 장비의 능력치 변화 예시.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큐브' 아이템 사용 전후 장비의 능력치 변화 예시.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확률형 아이템 등 일부 게임사의 과도한 비즈니스모델(BM)에 관한 논란도 바로 이 약관에서 출발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넥슨코리아에 전자상거래법 위반에 관한 역대 최대 규모인 116억4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넥슨이 ‘메이플스토리’ 내 장비 옵션을 재설정할 수 있는 유료 아이템 '큐브'의 확률을 조작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넥슨은 큐브 상품 도입 당시에는 옵션별 출현 확률을 균등하게 설정했으나 지난 2010년 9월부터 이용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인기 옵션이 덜 나오도록 확률 구조를 변경했다.

지난 2011년 8월 이후에는 선호도가 특히 높은 특정 옵션이 아예 출현하지 않도록 확률 구조를 재차 변경했다. '보보보', '드드드', '방방방' 등 인기 중복 옵션의 당첨 확률이 아예 '0'으로 나오게끔 설정됐다는 것이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넥슨은 이같은 사실을 이용자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위는 이러한 행위를 명백한 소비자 기망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를 재산권 침해로 보지는 않았다. 유료 아이템의 성능을 임의로, 심지어 몰래 변경했지만 애초에 게임사 소유물이기 때문에 이용자의 재산 가치를 낮춘 행위는 아닌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오는 3월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인데 실효성 논란이 불거진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게임사가 아이템 가치를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현재 약관을 뜯어 고치지 않는 이상 정보공개 의무화가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게임은 이용자와 함께 만들어야 활용가치가 높아지는 콘텐츠"라며 "이용자들도 아이템 등에 대한 권리를 부여 받아야 하고 법은 그 권리를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회장은 "확률형 아이템 논란의 핵심은 게임사들이 이용자들을 동반자라고 인식하지 않고 단순히 '돈벌이'로 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소유권에 대한 약관으로 게임사들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했고 아이템 권리마저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질의하고 있다. 사진=이상헌 의원 블로그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질의하고 있다. 사진=이상헌 의원 블로그

그렇다면 게임사들의 입장은 어떨까. 유료 아이템이 이용자의 소유가 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게임사는 일정 시일마다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 내 신규 아이템을 출시한다. 그런데 만약 소유권이 이용자에게 있다면 기존 유료 아이템 가치 하락에 따른 재산권 침해 우려 때문에 업데이트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또 수익성이 악화된 게임 서비스를 종료할 수 없다. 서비스가 종료될 경우 그동안 이용자가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사용한 금액을 전액 환불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마저도 이용자가 끝까지 환불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게임사 입장에서는 서비스를 종료할 수 있는 권한이 없게 되는 상황이 온다.

그럼에도 게임사가 이용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만큼 현재의 권리 관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수정은 필요해 보인다.  

일명 '게임특화 보좌관'이라고 불리는 이도경 보좌관(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좌관)은 "유료 아이템 소유권을 이용자에게 모두 넘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다만 서비스 종료를 못한다거나 유료 아이템 환불 문제 등 극단적인 사례로 이용자에게 소유권을 넘길 수 없다는 것은 게임사의 궤변으로 들린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용자의 이용권에 대한 권한 해석이 지금보다는 폭넓게 적용돼야 한다"며 "최근 문제가 된 확률형 아이템 조작 등 게임사들이 명백하게 잘못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이용자 권한을 명시적으로 문서화해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도 게임 이용자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약관을 수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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