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분쟁. 거창한 용어처럼 들리지만 모든 분쟁의 시작에는 계약서와 약관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계약서 또는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용어 해석이 모호해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면 합리적 거래가 가능합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민원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권익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수십, 수백여장에 달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소비자가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뉴스w는 소비자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순기능 역할을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쉽게 풀어 전달하겠습니다. 계약서 내용과 관련하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전문 기자들이 다각도로 취재해 명쾌한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컨트랙W는 'Contract knoW' 영문의 준말로 계약서를 알다 혹은 깨닫다는 뜻입니다.

 

사진=픽사베이

# 게임 내에서 보상 상자 아이템을 최근에 대량 사용했습니다. 수백 개가 되는 상자를 한번에 개봉하다 보니 정확히 몇 개의 아이템을 사용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게임을 이용하려고 하니 임시 이용 제한 조치를 당해 로그인할 수 없었습니다. 상자 아이템을 사용하면 보유량이 차감되지 않는 버그를 악용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게임 시스템 오류로 인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전에 이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의도를 가지고 악용한 것도 아닌데 이용 제한이 정당한 처사인가요?

이는 지난 2022년 스마일게이트RPG가 운영하는 게임 '로스트아크'에서 일어난 사건을 각색한 내용이다.

사건의 발단은 로스트아크가 업데이트를 진행한 후 몇몇 상자 아이템을 사용 시 보유량이 차감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사건 발생 17분만에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문제 상황을 알리고 해당 아이템을 사용 불가 상태로 조치한 후 임시 점검을 통해 문제를 수정했다.

점검 결과 문제 아이템을 사용한 기록이 있는 대상자는 총 1560명. 스마일게이트는 이들에 대한 임시 이용 제한 조치를 적용했다. 이후 문제를 일으킨 아이템을 사용한 이용자들에 대한 기록조사와 재화 회수 조치가 진행됐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버그를 사용한 유저들까지 조사 완료 전까지 게임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만이 폭발했다. 임지 제한 조치를 당한 이용자 중 일부는 최대 1주일 간 게임 플레이를 하지 못했으며 유료 결제 아이템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특히 당시 다양한 보상 상자 아이템에서 버그가 발생해 혼란을 더욱 키웠다. 

지난해 1월 4일 스마일게이트가 게시한 공지사항에도 조사 대상자 1560명 중 56명을 제외한 모두가 의도치 않게 버그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억울하게 이용 제한을 당했던 유저들 대상으로 상실된 게임 내 아이템이나 이벤트 기회비용 등을 복구하겠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버그 사용에 대한 기준은 무엇일까.

결론만 놓고 보면 명확한 기준은 없다. 이용약관에 의거 운영자인 게임회사가 이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스마일게이트뿐 아니다. 국내 대부분의 게임회사 약관에는 이용 제한 조치에 따른 판단을 전적으로 게임사가 판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로스트아크' 이용약관 내용 중 일부. 사진=로스트아크 홈페이지
'로스트아크' 이용약관 내용 중 일부. 사진=로스트아크 홈페이지

문제가 됐던 로스트아크의 이용약관 제 3장 '계약 당사자의 의무' 13조 '회원의 의무' 13항을 살펴보면 회원은 프로그램상의 버그를 악용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적혀있다.

또 제 2장 '이용계약의 체결' 8조 '이용신청에 대한 승낙과 제한' 8항을 짚어보면 사기, 해킹, 불법프로그램 악용 행위 등으로 회사의 업무를 방해했거나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회사가 판단하는 경우 이용 신청에 대한 승낙을 하지 않거나 추후 승낙을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이용 제한 조치에 있어 불법프로그램 행위 여부는 물론이고 이용자의 의도를 해석하는 회사의 판단이 주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넥슨 통합 서비스 이용약관' 중 일부내용. 사진=넥슨 홈페이지

게임업계 맏형 격인 넥슨의 이용약관은 어떨까. '넥슨 통합 서비스 이용약관'의 제 4장 '계약 당사자의 의무' 11조 '회원의 의무'를 살펴보면 게임서비스 등 프로그램의 버그를 악용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적혀있다.

또 제 5장 '게임서비스 등의 이용 및 이용제한' 25조 '서비스 이용제한 및 계약해지 조치'를 보면 회사가 허락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사용 및 배포, 시스템의 버그이용, 해킹 또는 기타 시스템을 훼손시키려는 행위를 할 경우 회원의 서비스 이용을 중지 또는 제한하는 등 합당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나머지 게임사들도 대동소이한 내용들이다. 이용자들은 이용 제한 조치를 받은 이후 통상적으로 7일에서 14일의 기간 동안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 권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방법들은 약관에서 찾기 힘들다.

로스트아크 이용약관에는 '회원은 본 조에 따른 이용제한 등에 대해 회사가 정한 절차에 따라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가 정당하다고 회사가 인정하는 경우 회사는 즉시 서비스의 이용을 재개한다'는 내용이 끝이다. 넥슨의 경우에도 '회원은 본조에 따른 제한조치에 대해 회사가 정한 절차에 따라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내용만 적혀 있을 뿐이다.

펄어비스 '검은사막 서비스 이용약관' 중 일부내용. 사진=검은사막 홈페이지
펄어비스 '검은사막 서비스 이용약관' 중 일부내용. 사진=검은사막 홈페이지

그나마 이용제한에 대한 이의신청에 대해서 자세하게 약관에 기재한 곳이 펄어비스다.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서비스 이용약관'에서는 이용제한에 대한 통보와 이의신청에 대해 별도의 조항을 마련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제 17조 '이용제한에 대한 통보 및 이의신청'을 살펴보면 이용자는 이용제한에 대한 내용을 통보받은 날로부터 15일 내에 홈페이지의 고객센터를 통해 이용제한과 관련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이용자의 이의신청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회사는 즉시 이용자에게 적용된 제한을 해제하고 조정된 게임정보를 복구하는 등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비교적 상세히 이를 기술하고 있다.

이용제한 통보 방법 등도 비교적 상세히 작성돼 있다. '이용자에게 이용제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회사는 이용제한의 사유, 유형, 기간 및 이의신청 방법을 이용자에게 서면, 전자우편, 게임 내 우편, 게임 초기화면의 팝업창 또는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통보하거나 홈페이지 등에 공지해 해당 내용을 이용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검은사막 플레이 장면. 사진=펄어비스 제공
검은사막 플레이 장면. 사진=펄어비스 제공

그런데 최근 펄어비스 검은사막에서도 이용 제한과 관련된 논란이 크게 터졌다.

로스트아크의 사례가 이용자의 버그 악용 여부 판단에서 논란이 촉발됐다면, 검은사막의 경우 이용자의 버그 사용 자체를 판단하는 시스템에 대한 의문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즉 이용자의 불법 프로그램 사용을 인지하는 내부 시스템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게임 스트리머 '배돈'은 지난달 14일 검은사막 운영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렸고 이는 유튜브 내 '게임 인기 급상승 동영상' 22위까지 올라가며 여러 게임 커뮤니티에서 크게 회자됐다.

영상을 보면 스트리머 A씨가 지난해 스트리밍 방송 중 자리를 비운 사이 게임 캐릭터가 6초간 공격 모션을 취했다. 다른 이용자로부터 신고를 받은 펄어비스는 '1년 치 로그 기록을 살펴봐도 매크로 기록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일부 이용자들의 성화에 재조사를 거쳐 매크로 사용 여부에 대해 스트리머 A씨에게 소명 요청을 했다. 이후 소명 불충분으로 해당 캐릭터는 임시 정지 후 영구 정지했다.

이에 배돈은 검은사막 운영진이 매크로 실행 여부를 영상을 보고 판단하는지 실험하기 위해 거짓으로 매크로가 실행된 척 방송을 송출하자 게임 진행 중 계정 정지를 당했다.

방송 송출 장면에는 배돈이 자리를 비운 사이 캐릭터가 움직였지만 실제로는 방송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격 키보드를 활용해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펄어비스가 게임 로그 등 정확한 근거 없이 이용 제한을 남발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이에 관해 당시 펄어비스 측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 스스로가 온라인 방송 플랫폼으로 자신의 게임 플레이 화면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경우 수정이나 편집을 거친 영상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일반적인 신고 영상 등과 달리 본인 방송 영상은 운영 정책 위반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해명했다.

이 해명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다시 검은사막 이용약관을 살펴보자. 검은사막 서비스 이용약관 제16조 '잠정조치로서의 이용제한'을 보면 회사는 이용자가 약관이나 운영정책 위반자로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경우 문제에 대한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계정을 정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객관적인 데이터를 내놓지 않더라도 합리적인 의심 상황이라면 게임사가 마음대로 이용 제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비인가 프로그램 방어하기' 공지사항 중 일부내용. 사진=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비인가 프로그램 방어하기' 공지사항 중 일부내용. 사진=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다만 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게임업계의 토로다. 매크로 등 불법 프로그램의 기술이 매우 발달해 이를 100% 잡을 수 있는 완벽한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매크로를 단속하는 프로그램이 막히면 결국 다른 프로그램을 또 써야 한다"며 "프로그램 각각의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존재하기 때문에 예를 들면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계속 왔다 갔다 하는 행위', '몇 시간 동안 반복적인 플레이를 하는 행위' 등 행태를 보고 직접적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펄어비스 논란의 경우 한 스트리머가 악의적으로 '함정 수사' 같은 행동을 취한 것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상황"이라면서 "전문적으로 게임 내 재화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장' 등을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불법 행위 등을 제재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촌극"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게임사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방어하는 것이 어렵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기도 했다.

넥슨 '메이플스토리'는 지난해 게시한 공지사항에서 "과거 매크로 방어를 위해 유저의 패턴에 대한 유사도를 계산하는 방식의 로직과 패킷을 이용했으나 실패했다"며 "매크로는 사냥에 사용하게 되는데 사냥 관련 패킷이 일반유저와 매크로를 구분하기 어렵도록 유사도가 높았기 때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매크로 등 불법 프로그램은 게임 내 생태계를 망치는 주범이기 때문에 게임사 입장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를 방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단 한명이라도 억울한 이용자가 등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약관 개정은 필요해 보인다. 이용 제한 조치에 따른 통지와 이의신청에 대한 약관을 이용자 입장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명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게임이용자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철우 변호사는 "표준 약관 내에서 이용자 제재와 관련한 입증의 의무를 게임사 측에서도 일부 부담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쉽게 표현하자면 이용자가 이용제한 조치의 근거에 대한 열람을 요구할 경우 게임사가 이에 응해 제재 조치의 토대가 된 자료를 상세히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불법 프로그램이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시간 등 최소한 정보만 포함하고 있는 이용 제한 통지를 조금 더 상세하게 기술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이용자 입장에서는 소명을 하기 위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게임사 측에서도 의심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이용 제한 조치를 받은 유저들 중 실제로 억울한 경우는 거의 없다"며 "표준 약관 변경을 통해 소명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한다면 게임사 입장에서도 소모적인 컴플레인을 해소할 수 있고 애초에 펄어비스 검은사막과 관련한 논란도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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