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분쟁. 거창한 용어처럼 들리지만 모든 분쟁의 시작에는 계약서와 약관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계약서 또는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용어 해석이 모호해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면 합리적 거래가 가능합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민원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권익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수십, 수백여장에 달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소비자가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뉴스w는 소비자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순기능 역할을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쉽게 풀어 전달하겠습니다. 계약서 내용과 관련하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전문 기자들이 다각도로 취재해 명쾌한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컨트랙W는 'Contract knoW' 영문의 준말로 계약서를 알다 혹은 깨닫다는 뜻입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우리는 게임 이용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며 본 계약은 중화인민공화국 '온라인 게임 서비스 포맷 계약 필수조항'에 근거한다."

미국 할리우드 첩보물 장르 영화에서 나올법한 중국 정부의 음모 같은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국내에서 버젓이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의 약관이다. 중국 게임사 룽위안 네트워크가 서비스하는 '카오스 아카데미'에서는 이 같은 개인정보 정책과 약관을 명시하고 있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모두 이 내용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용자들은 회원가입 시 무조건 약관에 동의를 해야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약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대응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게임 회원 가입 시 빽빽하게 작성된 약관들을 상세하게 읽어보는 이용자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내용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선 협박문과 같은 약관 내용이 중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한국어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생겨난 오역, 오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변명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말이다. 현재 서비스되는 약관 역시 대부분 카오스 아카데비와 비슷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문제는 이처럼 논란의 소지가 있는 약관을 표기해도 국내법상 해외 게임사 유통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관련 법률과 보완책이 형성되고 입법부 차원에서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전국민적인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평가다.

룽위안 네트워크의 '프라이버시권 성명' 중 일부 내용. 사진=룽위안 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처
룽위안 네트워크의 '프라이버시권 성명' 중 일부 내용. 사진=룽위안 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처

룽위안 네트워크의 약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해석 상의 오해로 비롯한 문제제기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룽위안 네트워크 게임을 이용할 시 동의를 구하는 '프라이버시권 성명'을 살펴보면 관련 법률법규와 국가 표준에 근거해 사용자의 인가 동의를 구할 필요 없이 사용자의 관련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사용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이에 따른 예시는 국가안보, 국방안보 등 국가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개인 정보, 공공안전과 공공위생 등 중대한 공공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개인 정보라고 작성돼 있다.

그렇다면 표기된 국가안보와 국방안보는 어느 나라를 지칭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또 다른 약관인 '룽위안 게임 사용자 서비스계약'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게임 사용자 서비스 계약에서는 본 계약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온라인 게임 관리 잠정방법'에서 제정한 '온라인 게임 서비스 포맷 계약 필수조항' 등에 근거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중국의 안보와 국방 등을 위해 국내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사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는 게임사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른다.

더 큰 문제는 수집된 개인정보를 어느 기관 혹은 단체에 제공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철우 변호사(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는 "중국 공안 등 개인정보를 넘기는 제3자를 명시해야 하고 보관기간이나 수집되는 개인정보의 범위 등도 명백하게 작성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약관이다"며 "중국 공안뿐만 아니라 불법 단체에 넘겨져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이용되는지 이용자 입장에서는 전혀 모르는 행태다"고 우려했다.

쿠카게임즈의 '최종 이용자 라이선스 계약' 내용 중 일부. 사진=쿠카게임즈 홈페이지 캡처
쿠카게임즈의 '최종 이용자 라이선스 계약' 내용 중 일부. 사진=쿠카게임즈 홈페이지 캡처

중국 게임사들의 '막무가내' 약관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삼국지 전략판' 등 게임을 서비스하는 쿠카게임즈는 게임 운영에 대한 문제를 회피하는 내용을 담은 약관을 제시하고 있다.

쿠카게임즈의 '최종 이용자 라이선스 계약'을 살펴보면 당사가 제공하는 제품에 관해 언제 문제가 발생할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서비스가 안전하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기술 결함과 해커 공격 등으로 초래된 손실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애초에 제공하는 게임 서비스가 이용자들 입장에서 사용하기에 안전하다고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특히 쿠카게임즈는 지난해까지 이용 약관에 사용자들이 중재계약과 집단소송을 진행할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약관에 기재돼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해당 내용은 현재는 수정된 상태다.

국회 본회의장 내부 모습. 사진=김상원 기자
국회 본회의장 내부 모습. 사진=김상원 기자

◆ 中 게임 '황당' 약관 막을 '국내 대리인 제도' 사실상 폐기… 다른 방법은?

이런 황당한 약관을 가진 게임들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 없다.

이도경 보좌관(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중국의 대표 앱인 '틱톡' 등 개인정보 반출이 이슈가 된 기업도 미국 내에서 청문회까지 열만큼 강력한 제재 시도가 있었지만 끝까지 해당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중국 기업들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장(한국게임학회장)은 "유럽연합(EU)의 경우 자국 내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밖으로 반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도록 법이 구성돼 있다"며 "국내에도 대리인 지정제도를 통해 국내 대리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강제하고 외국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상헌 의원은 지난해 6월 해외 게임사도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 게임 이용자 보호와 공급 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약 3개월 앞둔 현재까지 국회 소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다른 현실적인 대안은 없을까. 국내에서 유통되는 게임을 심사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법도 제기된다.

이 보좌관은 "중국의 서비스를 바꾸게끔 행사할 수 없다면 국내 유통 단계에서 게임의 등급을 분류할 때 등급 분류 취소나 반려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외교적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면 최소한 등급 분류가 완료된 후 이용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약관을 이용자에게 의무적으로 고지하게끔 하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변호사는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등급 분류를 진행할 시 개인정보 보호법 등 법령을 위반하는 약관이 있다면 서비스를 하지 못하게 자체 규정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며 "조건부로 해당 위법 요소가 제거되기 전까지 등급 분류를 보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런 강제책은 해당 게임사의 수익 창출 자체를 막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전국민적인 공감대와 정부의 추진력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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