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재 원료와 배터리(왼쪽부터)리튬, 원통형 배터리, 니켈, 양극재, 코발트. 사진=포스코퓨처엠
양극재 원료와 배터리(왼쪽부터)리튬, 원통형 배터리, 니켈, 양극재, 코발트. 사진=포스코퓨처엠

파죽지세를 보이던 ‘K-양극재’에 빨간불이 켜졌다.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등 굴지의 배터리 소재사들이 적자를 기록하거나 영업이익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완성차업체에서 배터리 제조사, 배터리 소재사로 이어지는 사업구조 특성상 반등을 노리기에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때 주식 시장에서 ‘황제 종목’으로도 불리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전기차 업황 회복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23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소재사 대부분이 지난해 4분기 기준 실적 부진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배터리의 용량을 결정짓는 핵심소재인 양극재를 다루는 기업들의 실적 감소가 두드러진다.

엘앤에프는 지난해 4분기 매출 6368억원, 영업손실 280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7% 줄었다.

유진투자증권은 에코프로비엠이 같은기간 매출 1조4000억원, 영업손실 425억원을 낸 것으로 추정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8% 하락했으며 적자 전환한 수치다. NH투자증권은 LG화학 첨단소재본부 양극재 부문이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포스코퓨처엠도 전체 사업에서는 영업이익을 기록하지만 양극재 부문에서는 적자를 보일 전망이다. 신영증권은 포스코퓨처엠이 지난해 4분기 매출 1조2600억원, 영업이익 76억원으로 시장 기대치를 76% 하회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양극재 부문은 매출액 8302억원, 영업손실 166억원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3개월 간 탄산리튬 가격 추이. 사진=한국자원정보서비스
최근 3개월 간 탄산리튬 가격 추이. 사진=한국자원정보서비스

◆ 리튬 가격 폭락… 양극재 판가 하락으로 재고손실 직격탄

지난 2022년만 하더라도 연간 최대실적을 연이어 갈아치우던 배터리 소재사들이 본격적인 침체기에 들어선 직접적인 이유로는 원재료 가격의 폭락이 꼽힌다.

양극재 판가는 핵심 원자재의 가격에 연동되는데 이 시차는 일반적으로 2개월에서 3개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튬이 양극재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만큼 리튬이 저렴해지면 양극재 가격도 함께 내리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비싸게 산 리튬으로 만든 양극재를 싸게 팔 수밖에 없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배터리 소재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탄산리튬 가격은 3개월 사이에 1kg 당 158.5위안(기준가격)에서 지난 22일 86.5위안으로 40% 이상 하락했다. 1년전과 비교해보면 지난해 1월 30일 기준 가격은 447.5위안으로 80%가량 폭락했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양극재 가격은 이달 kg당 34.1달러 수준으로 지난해 12월 대비 7% 하락 중이며 분기별로 보면 지난해 4분기에는 10% 하락, 올해 1분기에도 10%에서 15%가량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리튬 가격 하락은 멈춤세이나 양극재 가격의 추가 하락이 전망되기 때문에 올해 1분기까지 배터리 소재사들의 추가적인 손실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 침투율. 시장 전망치 49%에 비해 약 4%포인트 낮다. 사진=SNE리서치
글로벌 전기차 판매 침투율. 시장 전망치 49%에 비해 약 4%포인트 낮다. 사진=SNE리서치

◆ 전기차 감산 추세에 '을'된 소재사… "발주 축소에 대응 방법 없어"

영업이익과 함께 매출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도 주목할 점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양극재 판가 연동으로 인한 재고자산 손실만으로는 이렇게까지 영업실적이 좋지 않은 것을 설명할 수 없다”며 “매출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을 분석하면 양극재 판매 단가 하락에 더해 고객사들의 발주자체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세계 전기차 시장의 전반적인 수요 감소에 따라 배터리 소재사들의 양극재 판매량이 줄고 있다는 문제다.

이용욱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 감소와 대비해 양극재 가격 하락이 더 큰 폭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양극재 판매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고객사들의 구매 시점이 이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올해 세계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27.1%로 전년 대비 1.9%포인트 줄어들 전망이다. 전기차의 평균판매단가가 20% 이상 하락했지만 구매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는 배터리 합작공장을 철회했으며 폭스바겐과 파나소닉 등은 추가적인 공장 건설을 연기했다. 포드도 수요 부진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F-150 라이트닝’의 생산을 줄이기로 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하락하면서 완성차기업들이 전기차를 감산하거나 공장 가동을 연기하고 이에 따라 배터리 제조사들은 소재에 대한 발주를 감소하며 소재사들은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문제는 소재사들 입장에서 양극재 공급이나 판매 등을 고객사와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재사들이 을의 위치에서 사업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밸류체인이 실적 부진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라는 설명이다.

박철완 교수는 “소재사가 사업을 영위하는 특성 자체가 ‘을 중의 을’과 다를 바 없다”며 “고객사 발주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는데, 이전까지의 실적과 과열된 주식 가격 등으로 인해 시장 전반적으로 너무 장밋빛 미래에만 주목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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