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이자장사, 대출금리 속도 조절하라"(2022년 6월)

"은행 돈 잔치로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원회)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2023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1년 새 두번에 걸쳐 은행을 상대로 작심 비판했다.

그동안 국회와 정부가 은행 이자를 상대로 문제점을 제기한 사례는 많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통령의 질타에 은행 관리감독 기구인 금융당국이 바빠졌다. 금융당국은 관련 대책으로 상생금융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은행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행 생존 키는 금융당국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은 규제산업으로 분류돼 정부가 그은 선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은행이 설립되고 영업하는 모든 과정이 정부 틀 안에서 움직인다. 금융사 인수합병도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만약 선을 벗어나면 은행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물론 선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정권 교체에 따라 옷을 벗는 경우도 있다.

정부 또는 금융당국 수장(임원) 눈에 거슬리는 경우 은행장이 책임을 지고 떠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금융사에서 정부의 힘은 막강하다.

이러한 역사(?)를 품었기 때문인지 은행은 순한 양처럼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 정부 보조를 맞춰왔다.

새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 늘 그 흐름에 따랐다. 뜻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창조경제'라는 공약이 만들어졌다면 '창조금융'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고 ESG를 화두로 내걸면 'ESG 금융'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 정부는 협력 메시지보다는 '돈잔치', '이자장사'라는 부정어를 대국민에게 먼저 꺼냈다.

큰 돈을 벌었으니 자연스럽게 남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은행들은 윤 정부가 집권한 뒤부터 대규모 사회공헌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사회공헌ㆍ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 현황'을 보면 이들 은행이 올해 상반기 지출한 사회공헌 지원 금액은 5315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지원액(7822억원)의 70%에 달했다. 1년 전(4727억원)과 비교하면 12.4% 증가한 수치다.

물론 은행권이 지난해 기준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민간 회사를 상대로 강제적 사회공헌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인가. 또 정부가 은행의 돈잔치라는 용어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을까.

은행들은 정부가 정한 규제 안에서 대출을 실행하고 이자를 받는다. 다시 말해 규제 안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은행들이 이자놀이로 막대한 수익을 냈다면 은행을 비판하기 보다는 정부가 정한 시스템을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이자이익이 금리인상에 따른 단기성 이익인지, 중장기적으로 꾸준하게 과도한 이익을 내는 것인지 여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막대한 이자 수익으로 차주들의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할 일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동안 대국민 앞에 은행을 직접적으로 꾸짖은 적이 없다. 다만 은행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이 탄생한 계기다.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은 있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비대면 온라인 영업으로 고정비용을 낮추면서 송금수수료 등이 무료화됐고 예금 금리는 높게, 대출금리는 낮게 받아 다수의 금융소비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의문점은 또 있다. 은행뿐만 아니라 최근엔 카드사도 사회공헌 지출을 위해 금고 열쇠를 돌렸다. 우리카드와 현대카드, 롯데카드, 신한카드 등 국내 전업계카드사가 지난달부터 쏟아낸 상생 금융지원금액은 무려 1조5000억원을 넘었다. 여기에 조만간 삼성카드도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카드사들이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수익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는 더 심각하다. 올해 1분기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비씨·우리·하나 등 8개 전업 카드사의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약 27.5% 감소한 5866억원을 기록했다.

이중 신한카드는 1분기 당기순이익이 전년대비 5% 이상 줄어든 1667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반기엔 새마을금고 사태 여파로 채권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영업 조달비용도 오를 전망이다. 카드사뿐만 아니다. 보험사도 상생자금을 마련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은행들을 압박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손실을 보고 있는 금융사까지 사회공헌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한 금융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고금리ㆍ고물가 현상이 지속하면서 경기침체가 지속하고 있는데 가장 만만한 은행을 타깃으로 삼아 금리인상을 최소화하려는 목적 아니겠는가. 규모가 큰 은행만 교통정리하면 주요 계열사 또는 규모가 작은 카드사나 보험사, 증권사는 자연스럽게 정부 보조에 맞춰 줄서기 할 것이다."

그간 정부가 수수료나 이자에 대해 개입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그리고 늘 관치금융 논란이 뒤따랐다. 그런데 이번처럼 금융사 금고를 직접 열라고 압박한 사례는 드물다. 관치금융보다 더 우려된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는 바보가 아니다. 결국은 푼 만큼 다른 방식으로 줄어든 금고를 채울 것이다. 채움의 대상은 결국 금융소비자다. 그게 시장논리다. 

'속도조절', '위화감'은 지금 누구에게 필요한 단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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