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왼쪽 티몬 소셜기부 자료참조, 오른쪽 오무하씨.
사진 출처=왼쪽 티몬 소셜기부 자료참조, 오른쪽 오무하씨 제공.

“병원에서는 해리 증후군(해리 장애)이라고 하더라고요. 당시의 사건이 먼 일처럼 느껴져요. 현실감각이 없어요. 당장 드는 생각은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수억원의 병원비를 어떻게 내야하는지 여부가 제일 큰 걱정이에요. 꿈이요?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저 바람이 있다면 엄마랑 별탈없이 둘이서 사는 것, 그게 전부에요”

한창 꿈을 꾸고 연예인을 좋아할 시기,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아도 모자라는 그런 나이 10대. 하지만 이런 평범한 삶조차 오무하씨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이유도 모른 채 엄마와 생이별 했고 같이 산 아버지로부터 폭력에 시달렸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청소년 쉼터'. 그녀는 중학교 절반 이상을 이곳 쉼터에서 지냈다. 

성인이 돼 다시 만난 엄마. 하지만 엄마는 상상도 못한 사고의 피해자가 됐다. 엄마와 같이 일한 동료가 휘발유를 몸에 뿌리고 분신을 시도했다. 가해자가 몸에 불을 붙였을 때 그의 팔 안에 옴짝달싹 못한 엄마가 붙잡혀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엄마는 전신 41%, 3도 화상을 입었다. 만약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사람은 오무하씨였을지도 모른다. 불과 두 달도 안된 5월 중순에 벌어진 일이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집 대신 청소년 쉼터를 택한 14살 소녀… 계속된 父의 불화

<뉴스w>는 지난 6월 30일, 늦은 저녁 경기도 용인 모 카페에서 32세 여성, 오무하씨와 만났다. 그녀는 경기도 용인에서 충북 충주까지 출퇴근한다. 이날도 충주로 출퇴근하느라 늦은 시간에 인터뷰가 진행됐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목소리는 울먹울먹했지만 차분했고 표정은 담담했다. 힘든 과거를 다시 꺼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그녀가 중학교 2학년, 14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했다. 남동생이 겨우 7살 때다. 양육권은 아빠가 가져갔다. 양육권을 넘기지 않으면 이혼을 안해주겠다는 압박에 엄마가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엄마와 생이별을 했다. 

“부모님이 같이 살 때 두 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집엔 늘 불화가 있었고 엄마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상태였어요.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는 늘 엄마한테 애정을 갈구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전 선택권도 없이 아빠랑 살게 되었어요. 당시 전 아빠에 대한 증오심이 매우 컸어요. 엄마를 떠나 보낸 장본인이 아빠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아빠는 이혼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어요. 그저 '내가 선택했으니 넌 따라야 한다'는 식이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부녀간의 사이는 점점 더 악화됐다.

숨 쉴 곳이 필요했던 그녀는 부모님이 이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집 대신 청소년 쉼터를 찾았다.

"그저 매일매일 쉼터와 학교만 왔다갔다 했어요. 저를 괴롭히는 언니들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쉼터가 집보다는 편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 쉼터의 삶도 그리 길지 못했다.

“쉼터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원래 1년이에요. 그런데 저는 더 있고 싶어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 있었어요. 쉼터에서 머문 기간은 1년 6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나와야 해요.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죠"

집에서의 삶은 또 다시 악몽의 반복이었다. 

아빠와의 다툼이 다시 심해졌고 때론 폭행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버티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길 기다리면서"

◆갑자기 찾아온 아빠의 뇌출혈… 10년 만에 재회한 엄마

그런 그녀에게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온다. 대학교 2학년 때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아빠가 은행에 빌린 돈만 2억원 가까이 됐어요.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어요. 병원비도 내야하고 동생 중학교도 입학시켜야 하는 시기였는데…“

설상가상 아빠가 내연녀를 폭행하면서 그녀는 경찰서까지 다녀와야 했다.

"당시 아빠 곁엔 여자가 한명 있었어요. 갑자기 찾아온 뇌출혈로 간병인이 필요했는데 당시 그 여자가 아빠를 도와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간병비를 달라고 요구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아빠는 지팡이를 들고 그 여자를 때렸어요. 전 그 여자 집에 찾아가 합의서를 받아내야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그녀는 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1년 간 방황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엄마와 다시 연락이 닿았고 10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동안 방황을 했는데 그때 연락이 된 엄마가 같이 일을 하자고 권했어요. 엄마는 식품관련 유통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혼자하기 벅차다며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전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부산에서 지금의 경기도로 이사 왔어요"

그러나 엄마와 재회의 기쁨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엄마랑 함께 일을 한 시기는 약 5년 정도 됐어요. 중간 중간 사소한 말다툼은 있었지만 그래도 큰 사건 없이 평탄했던 시간이었어요“

사건의 발단은 엄마와 같이 일한 동료로부터 시작됐다.

"가해자는 원래 엄마의 거래처 임원이었어요. 엄마가 혼자 아등바등 사는 게 힘들어보였는지 도와 줄테니 같이 일하자며 엄마에게 먼저 다가왔어요. 그게 약 3년 전 일이에요. 그런데 막상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어요"

두 사람의 갈등이 최고조로 올랐을 때가 지난해 11월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올해 초 가해자가 회사를 떠났어요. 퇴사 이후 그 사람은 엄마한테 지속적으로 협박성 문자를 보냈어요. 자신을 무시했다는 게 이유였어요. 엄마는 월급과 퇴직금을 모두 정산해줬는데 자신을 일개 직원 취급했다고 분노를 표출했어요. 아마도 그 사람은 자신이 엄마의 남편이라고 생각했나봐요. 법적으로도 아무관계가 아니고 같이 산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공교롭게도 가해자가 회사를 떠나 재취업한 곳이 엄마 회사에서 15분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가해자는 점심시간 때 불쑥 우리 사무실에 들어오거나, 회사 인근 근처에 주차를 하고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행동을 반복했어요. 그때만해도 위험하다는 인식은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게 될지는 몰랐어요"

◆분신시도에 전신화상 입은 엄마…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

비극의 사건은 5월 17일 오전에 시작됐다.

"엄마와 같이 아침 일찍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그 사람이 사무실 옆 창고 앞에서 등산용 가방을 앞으로 매고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있더라고요. 휘발유 두 통을 가져왔는데 하나는 자신의 몸에, 다른 하나는 주변에 뿌렸어요. 그러면서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큰 소리로 협박했어요“

"너무 놀란 엄마는 저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쳤어요. 정신없는 와중에 핸드폰을 들었는데 그 사이에 가해자가 절 인질로 붙잡았어요. 그리고는 경찰에 신고하면 돌이키지 못할 상황이 올 거라고 협박했어요. 엄마의 도움으로 저는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붙잡혔어요. 가해자가 왼팔로 엄마의 목을 졸랐는데 엄마는 저보고 밖으로 나가서 경찰에 신고하라고 외쳤어요. 저는 다시 전화를 걸기 위해 나갔는데 그때 그 사람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어요. 저는 다시 들어와 엄마를 부축하며 외부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갔어요. 그리고 수돗물로 엄마 몸에 붙은 불을 껐어요“

"그 와중에 119가 출동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어요. 엄마는 지금도 중환자실에 있는데 언제 퇴원할지는 알 수 없어요. 며칠 전엔 큰 수술도 받았어요“

다행히 엄마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치료비에 그녀는 또 한번 절망에 빠졌다.

"현재 병원에서 청구된 입원비와 치료비, 수술비만 1억원이 넘어요. 그런데 아직 엄마는 중환자실에 있는 상태에요. 퇴원하기까지 들어갈 비용은 최소 2억원이 넘을 것 같아요"

당장 1억원이 넘는 비용을 한번에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약 90%를 부담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처방에 불과하다. 1~2년 후 공단에서 구상권을 청구하면 이 비용은 고스란히 오씨 측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은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에 따라 보험자인 국민이 타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경우 가해자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아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일차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자에게 치료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엄마처럼 상해로 입원한 경우엔 거의 대부분 공단에서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병원에서 이야기 해주더라고요. 저도 공단에 연락을 해봤는데 (구상권 청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어요"

가해자 측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길은 없을까.

"치료비는 모두 가해자 측에서 모두 부담해야 하는데 분신을 시도한 그 사람이 이번 사고로 사망했어요. 경찰한테 들은 바로는 그 사람에게 가족들이 있는데 10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법에서도 10년 이상 왕래가 없다면 사실상 이혼으로 보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원비는 모두 우리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해요"

◆힘든 과거 딛고 다시 희망을 노래하다

이번 사건 이후 오무하씨는 해리장애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해리장애는 극심한 고통에 처해 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때 일시적으로 기억을 상실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위 세계에 대해 비현실감을 느끼게 되며 자기 자신도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희망을 얘기한다. 당장의 삶이 달라졌다. 그녀는 자신의 학창시절과 가족 얘기를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말하기엔 자신이 초라해보였고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웠다. 친한 친구도 자신의 성장과정을 자세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친구들은 오무하씨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엄마와의 관계도  이전보다 부쩍 좋아졌다. 

”그동안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처음으로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표현했어요. 앞으로 행복한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고 빨리 퇴원해서 엄마랑 같이 살자고 했어요. 엄마는 알겠다고 했는데 저한테 계속 미안하다고만 하시네요“

☞기부에 동참해주세요

오무하씨는 티몬에서 운영하는 '소셜기부'로부터 도움을 받아 현재 엄마의 병원비 모금을 받고 있습니다. 소셜기부는 티몬이 2010년 시작한 사회공헌 캠페인으로 사회적 기업 상품을 판매하거나 비정부기구(NGO)와 함께 소외계층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열면 고객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모금은 수수료 없이 전액 소외계층에게 지급됩니다. 2일 현재 티몬 소셜기부엔 '[소셜기부] 전신화상과 홀로 싸우고 있는 엄마에게 희망 전하기'라는 제목으로 캠페인이 진행 중입니다. 마감은 4일 정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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