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분쟁. 거창한 용어처럼 들리지만 모든 분쟁의 시작에는 계약서와 약관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계약서 또는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용어 해석이 모호해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면 합리적 거래가 가능합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민원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권익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수십, 수백여장에 달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소비자가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뉴스w는 소비자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순기능 역할을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쉽게 풀어 전달하겠습니다. 계약서 내용과 관련하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전문 기자들이 다각도로 취재해 명쾌한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컨트랙W는 'Contract knoW' 영문의 준말로 계약서를 알다 혹은 깨닫다는 뜻입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제가 하는 게임에서 최상위 등급의 보스 레이드 콘텐츠가 업데이트됐습니다. 레이드를 선착순 10위 안으로 클리어하면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 밤낮 없이 공략을 위해 게임에 매진했죠. 하지만 순위 안에 드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뒤늦게 알고 보니 10위 안에 든 이용자들 중 다수가 '대리게임'을 통해 이를 클리어했다고 합니다. 귀중한 보상까지 걸린 콘텐츠인데 남이 대신 게임을 해줘서 이득을 취득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인가요?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넘어 억울하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지난해 10월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에서 불거진 대리게임 적발 사건을 각색한 내용이다.

대리게임은 타인이 소유한 계정을 빌려 플레이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가를 받고 타인의 계정을 사용해 캐릭터 레벨을 올려주거나 아이템을 얻는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대리게임은 국내 게임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졌기에 각종 게임에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중 로스트아크는 당시 신규 최상위 보스 레이드 콘텐츠인 '카멘'을 업데이트했다. 카멘 레이드를 먼저 클리어한 순으로 10팀을 뽑아 공격대에 특별한 기념 아이템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해 큰 화제를 모았다. 레이드 콘텐츠의 클리어 속도에 따라 특별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은 게임 내에서 처음이었다.

그런데 순위권에 든 팀 내 이용자들 상당수가 대리게임을 통해 레이드를 클리어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금강선 당시 로스트아크 디렉터(현 스마일게이트RPG CCO)는 의혹이 커지자 철저한 조사와 최대 수위의 조치를 선언했고 '탑 10' 팀 가운데 대리 유저가 포함돼 있던 6팀은 클리어 기록 전체가 제거됐다. 그러면서 향후 강력한 제재도 약속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전문 대리게임 업체의 홍보 내용과 가격. 사진=해당 업체 홈페이지 캡처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전문 대리게임 업체의 홍보 내용과 가격. 사진=해당 업체 홈페이지 캡처

대리게임은 로스트아크 등 MMORPG가 아닌 팀과 팀이 경쟁해 승리를 차지하는 AOS 장르의 게임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대리게임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제기되는 게임 중 하나는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롤)'다. 이 게임은 5대 5로 팀을 나눠 상대방 진영의 기지를 파괴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롤에서는 브론즈부터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챌린저로 이용자들의 실력에 따라 등급이 나눠진다. 롤은 실력이 비슷한 이용자들끼리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같은 등급의 이용자들을 매칭시킨다. 압도적인 승리와 패배가 일어날 가능성을 낮춰 게임의 재미를 높인다는 취지다.

그런데 대리게임에서는 이런 원활한 게임 진행 자체를 방해한다. 한 유저가 대리 게임을 통해 등급을 올렸다고 가정하면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는 이용자 4명과 같은 팀으로 매칭되고 결국 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돈을 받으며 대리 게임을 조장하는 업체까지 횡행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도 인식되고 있다. 금융 사기와 개인 정보 노출 위험 등 추가적인 문제도 덤이다. 그러나 구글 등 포털사이트에 '롤 대리'만 검색해도 관련 업체의 사이트나 정보 등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운영 정책' 내용 중 일부. 사진='리그 오브 레전드' 홈페이지 캡처
'리그 오브 레전드 운영 정책' 내용 중 일부. 사진='리그 오브 레전드' 홈페이지 캡처

다만 대부분 게임사들은 약관을 통해 대리게임을 규제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운영 정책'에서는 대리게임을 공정한 경쟁 방해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계정 공유 등을 통해 본인이 아닌 타인이 게임을 대신 접속하거나 플레이하도록 시도하는 행위, 인위적으로 게임의 승리와 패배를 조작하거나 이를 시도하는 모든 행위가 해당된다.

특히 라이엇게임즈는 대리게임 행위를 홍보하거나 이를 연상하게 하는 닉네임도 불건전 행위로 분류해 제재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공지사항 내용 중 일부. 사진='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캡처
'메이플스토리' 공지사항 내용 중 일부. 사진='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캡처

넥슨의 '메이플스토리'도 약관에서 대리게임을 규제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유저가 '사냥' 콘텐츠를 대리 게이머를 통해 수행시키고 게임 내 기본 재화인 '메소'를 수급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꾸준히 제기된 게임이다. 불공정한 메소 수급이 늘어나면 아이템 물가 등 게임 내 경제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메이플스토리 운영정책'에서는 현금이나 현물을 대가로 다른 고객의 캐릭터를 육성하거나 콘텐츠를 이용하는 경우 관련 재화를 전액 회수하고 이용 제한 조치를 진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이 재화가 회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이용 제한 조치를 더 강하게 적용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내용 중 일부. 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내용 중 일부. 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 대리게임, 최고 2년 징역·2000만원 벌금… 적발은?

특히 대리게임을 업으로 삼아 현금을 획득하기 위해 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법적인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대리게임 금지법)에 따르면 게임물 관련사업자가 승인하지 않은 방법으로 게임의 점수나 성과 등을 대신 획득해 주는 용역을 알선하거나 이를 제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이런 법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대리게임은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특정 사례에 대한 적발은 쉽지만 이를 뿌리 뽑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게임 업계의 토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사가 이 모든 사례에 대해 이용자를 대상으로 사법 처리를 진행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며 "개별적인 신고에 따른 대응으로 대리게임에 대한 제재는 가능하지만 게임사에게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례를 분석하며 전수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전문 대리게임 업체의 Q&A 항목. 사진=해당 업체 홈페이지 캡처.
'리그 오브 레전드' 전문 대리게임 업체의 Q&A 항목. 사진=해당 업체 홈페이지 캡처.

◆ 법적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 고도화되는 수법도 문제

실제로 대리게임이 법적처벌까지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1만884건의 대리게임 행위가 적발됐다.

연도별로 보면 지난 2019년 2162건, 2020년 1509건, 2021년 680건으로 줄다가 2022년 3192건, 지난해 9월까지 3341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게임별 대리게임 적발 건수는 롤이 501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GTA 5' 2614건, '세븐나이츠2' 712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394건, 메이플스토리 239건 순이다.

이 중 74.2%가 위법행위로 밝혀졌지만 불법행위 당사자를 처분하는 수사의뢰는 226건에 불과했다.

적발을 피하기 위해 발전하고 있는 대리게임 수법도 문제다.

롤의 경우 의뢰인의 계정으로 직접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로 팀 게임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주는 방식으로 현금을 받는 업체도 있다. 이를 대리게임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린다.

이철우 변호사(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는 "IP 추적에서 잡히지 않기 위해 계정주 본인과 대리 게이머가 같은 장소에서 대리게임 행위를 진행하는 경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대리 게이머가 의뢰자의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경우 등 적발을 피하기 위한 수법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법적 근거가 있더라도 게임사들이 대리게임 행위를 적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리게임을 업으로 삼는다' 등 법 조항 상에서도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으며 어느 정도까지의 현금 수령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먼저 대리게임에 대한 정의 자체를 세분화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행위를 구체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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