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분쟁. 거창한 용어처럼 들리지만 모든 분쟁의 시작에는 계약서와 약관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계약서 또는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용어 해석이 모호해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면 합리적 거래가 가능합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민원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권익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수십, 수백여장에 달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소비자가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뉴스w는 소비자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순기능 역할을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쉽게 풀어 전달하겠습니다. 계약서 내용과 관련하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전문 기자들이 다각도로 취재해 명쾌한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컨트랙W는 'Contract knoW' 영문의 준말로 계약서를 알다 혹은 깨닫다는 뜻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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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대만에서 강진이 발생해 부상자가 1000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발생했더라고요. 이번 주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상품으로 타이베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여진 피해가 우려돼 걱정이 됩니다. 여행사에선 취소하면 '고객 변심'에 따른 결정이기 때문에 수수료가 부과된다고 합니다. 천재지변에 따른 결정을 고객 변심으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요. 

대만 동부 화롄 인근 바다에서 지난 3일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대만 여행을 계획 중인 국내 여행객들이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예정대로 여행을 가기엔 불안하고 취소하면 수수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사들은 현재 지진 피해를 직격타로 맞은 화롄 여행 상품은 수수료 없이 환불을 진행하고 있지만 타이베이나 가오슝 등 다른 지역은 취소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화롄 지진은 1999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강한 수준으로 발생했다. 이로 인해 사망자 12명, 부상자 1011명 등 인명피해도 지속적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만인과 외국인을 포함한 실종자는 25명 이상이다.

강진 이후 지난 5일까지 진앙지인 화롄을 중심으로 500차례 이상의 여진도 이어지고 있다. 타이완 중앙 재해 대응센터에 따르면 규모 5~7 사이의 강한 여진도 약 20회에 달했다. 과연 여행 취소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이 합당한 걸까.

하나투어의 대만 여행 패키지 상품 환불 규정. 사진=하나투어 홈페이지 캡처
하나투어의 대만 여행 패키지 상품 환불 규정. 사진=하나투어 홈페이지 캡처

먼저 취소 수수료 대신 패키지 상품 구매 후 취소 위약금 현황부터 살펴보자.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대만 패키지 상품 약관을 살펴보면 여행 개시 20일 전까지 취소 통보 시 여행 요금의 10%를 배상해야 한다. 10일 전까지 취소한다면 15%, 8일 전은 20%, 1일 전은 30%다. 만약 당일 취소를 진행하게 되면 요금의 50%를 배상해야 한다.

수수료 배율은 대부분 여행사들의 패키지 상품에 동일한 수치로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만 패키지 여행 상품은 출발일에 따라 약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만약 여진이나 추가적인 피해가 우려돼 여행을 취소한다면 최대 60만원이 넘는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국외여행 표준약관 일부 내용. 사진=공정거래위원회 배포 자료 캡처
공정거래위원회의 국외여행 표준약관 일부 내용. 사진=공정거래위원회 배포 자료 캡처

◆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추상적인 국외여행 표준약관 규정

그렇다면 자연재해 우려로 여행을 취소할 시 수수료를 감면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민법 제674조에 따르면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각 당사자는 여행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유가 당사자 한쪽의 과실로 인해 생긴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은 해지 사유가 한쪽의 사정에 속하는 경우 그 당사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천재지변은 여행사나 항공사, 숙박업소 등의 과실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이들의 보상 책임은 없다. 법만 따지고 본다면 여행객이 비용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해답은 민법이 아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명시한 국외여행 표준약관에 있다.

국외여행 표준약관 제12조에는 천재지변, 전란, 정부의 명령 등으로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여행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문제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라는 문구가 매우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진이 일어난 지역의 일주일 뒤 상황이 천재지변 피해 아래에 놓여있는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매우 애매하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장소의 범위도 모호하기는 매 한가지다.

지난 3일 지진으로 인해 화롄과 약 287km 떨어진 타이베이에서도 주거용 건물이 무너지거나 정전이 일어나는 등 피해가 있었으나 여행사들은 타이베이 여행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를 여전히 부과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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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기 결항 여부가 판단기준… "표준 약관 구체화 이뤄져야"

여행사들은 이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한 여행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자연재해로 인해 항공편이 뜨지 않거나 호텔이 폐쇄되는 상황을 천재지변으로 인해 정상적인 여행이 불가한 상태로 판단하고 있다"며 "여기에서도 가장 큰 판단 기준은 항공편의 결항 여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대만 지진 피해의 경우 공항은 모두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차량으로 갈 수 있는 일부 지역에만 피해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약관을 적용해 수수료를 감면받기는 힘들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화롄 지역이 포함된 상품의 경우 수수료 부과 없이 환불을 해주거나 대체 상품으로 변경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의무적인 것은 아니며 도의적인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비행기가 결항하지 않고 출항을 하고 있는 상태라면 천재지변 상황이 끝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항공편이 운행되는 상황이라면 해당 지역이 천재지변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보는 것으로 차량이나 철도 이용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또 지진이 날까 봐 불안해서', 혹은 '평소와 같은 관광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등 이유로 여행을 취소한다면 이를 단순 변심으로 인한 취소로 판단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행객 입장에서는 재해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을 방문하는 것은 불안한 요소가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여행사 입장에서는 모든 요구를 수용해 환불을 진행할 시 막심한 손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한쪽 편을 지지하기는 애매한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이어 "표준약관의 천재지변에 관한 규정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이라며 "기간과 장소, 재해의 규모 등과 함께 어느 수준까지 위약금을 물지 않고 취소할 수 있는지 등 항목들을 약관 내에서 구체화해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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