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분쟁. 거창한 용어처럼 들리지만 모든 분쟁의 시작에는 계약서와 약관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계약서 또는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용어 해석이 모호해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면 합리적 거래가 가능합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민원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권익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수십, 수백여장에 달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소비자가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뉴스w는 소비자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순기능 역할을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계약서와 약관을 쉽게 풀어 전달하겠습니다. 계약서 내용과 관련하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전문 기자들이 다각도로 취재해 명쾌한 해답을 드리겠습니다. 컨트랙W는 'Contract knoW' 영문의 준말로 계약서를 알다 혹은 깨닫다는 뜻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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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을 위해 한 여행사를 통해서 항공권을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상세 요금 내역을 보니 1만원가량의 '발권대행 수수료'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유류할증료와 제세공과금과는 별도의 항목인데 이건 뭔가요?

여행사를 통해서 항공권을 발권하는 경우 발권대행 수수료가 구매자에게 부과돼 눈길을 끈다. 여행사들은 고객을 대신해 항공권을 발권하고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발권대행 수수료를 징수하고 있다.

소비자는 여행사를 통해 항공권을 구매할 시 통상적으로 왕복 기준 국내는 2000원, 해외는 1만원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사실 크게 비싼 수준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여행사가 발권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요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발권대행 수수료에는 여행사와 항공사 사이의 복잡한 갈등의 역사가 얽혀 있다. 최근에는 정부 중앙 부처까지 개입해 발권대행 수수료에 관한 법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항공사 예약 상세 요금에 표시된 발권대행 수수료 예시. 왼쪽은 하나투어의 서울-방콕 항공권 예약 시 나타나는 요금표, 오른쪽은 인터파크투어의 서울-제주 항공권 예약 시 나타나는 요금표. 사진=해당 여행사 웹 캡처
항공사 예약 상세 요금에 표시된 발권대행 수수료 예시. 왼쪽은 하나투어의 서울-방콕 항공권 예약 시 나타나는 요금표, 오른쪽은 인터파크투어의 서울-제주 항공권 예약 시 나타나는 요금표. 사진=해당 여행사 웹 캡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행사가 항공사를 대신해서 항공권을 판매하면 항공사로부터 발권 대행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정하는 발권 수수료율 규정이 바뀌면서 여행사와 항공사의 발권 수수료를 둘러싼 분쟁이 시작됐다. IATA는 전세계 120개국 약 290개 항공사가 가입된 항공사단체로 전세계 운송량의 약 83%를 차지한다.

이전에는 여행사들에 지급하는 발권 수수료율에 대해 모든 항공사가 9%로 통일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런데 항공사들이 담합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IATA는 지난 2007년 단일 수수료 규정을 폐지했다.

대신 항공사와 여행사간 수수료율을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항공권 온라인 판매 비중이 확대되면서 항공사 입장에서는 여행사에게 지불하는 수수료를 유지하면서까지 간접판매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글로벌 항공업계는 IATA 관련 규정을 근거로 발권대행 수수료를 사실상 폐지했다. 이에 따라 여행사들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발권대행 수수료가 사라진 후 이를 보전하기 위해 일부를 고객들로부터 징수하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대한항공을 시작으로 지난 2010년부터 여행사에 발권대행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후 여행사들은 지난 2017년부터 소비자들에게 발권대행 수수료를 청구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크게 부담되는 액수는 아닐지라도 결국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지불하게 된 셈이다.

'여행사 핸드북의 결의' 내 812 중 9.2.1.(a)의 내용. 사진=IATA 홈페이지 캡처
'여행사 핸드북의 결의' 내 812 중 9.2.1.(a)의 내용. 사진=IATA 홈페이지 캡처

문제가 된 IATA 규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IATA의 여객판매 대리점계약(PSAA) 제2조 1항 a에 따르면 항공사와 여행사의 관계를 규율하는 거래조건은 PSAA에 첨부된 '여행사 핸드북의 결의'에 명시된 바에 따라 정해진다.

여행사 핸드북의 결의 812 중 9.2.1.(a)에는 'Subject to the provisions of this section 9, any commission or other remuneration due to the Agent by a BSP Airline Shall be determined by the BSP Airline'이라고 적혀있다.

항공사가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또는 기타 보수는 IATA의 BSP(IATA가 제공하는 항공권 결제 대금 시스템)를 이용하는 항공사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언뜻 보기에도 불합리해 보이는 해당 규정에 여행업계는 반발했다. 한국여행업협회(KATA)는 지난 2018년 PSAA에 대해 불공정 약관 심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청구했다. 공정위는 지난 2021년 10월 '항공사가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등을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은 불공정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IATA에 이를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IATA는 세계적인 단일 기준을 훼손하고 한국시장에서 예외를 두는 데 반대하며 이를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이에 관해 "여행사 입장에서는 협력관계에 있던 항공사를 통해 얻던 수입원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공사 자체적으로 특가 등을 내세우면서 여행사가 가지고 있던 항공사 발권 가격에 대한 경쟁력은 사라진지 오래다"며 "다만 현재까지 여행사를 통해 예약이나 발권을 요청하는 고객이 중장년 층을 중심으로 많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발권대행 수수료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업무 행위에 대한 대가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항공사들의 수수료 미지급 결정 이후 여행사들이 이 즉시 발권대행 수수료를 구매자에게 전가한 것은 아니다"며 "가격 상승에 대한 반발을 우려해 몇 년간은 이를 구매자에게 징수하지 않았으며 이 기간에는 전혀 이익이 나지 않는 상태로 발권 업무를 해 왔다"고 역설했다.

이어 "현재 여행사들은 항공사가 지금부터 수수료를 지급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불공정한 약관이라도 수정해 달라는 입장이다"고 덧붙였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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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빼든 공정위, 그러나 패소… 대법원 판단 관심↑

결국 공정위는 IATA가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자 지난 2022년 6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당시 공정위는 "수수료나 기타 보수는 항공사와 여행사가 협의해 결정할 사안"이라며 "해당 내용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IATA 조항은 약관법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IATA는 이 시정명령에 불복해 같은해 9월 시정명령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2월 1일 법원은 IATA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행정7부가 원고(IATA) 승소로 판결하고 시정명령을 취소하라고 밝힌 것.

재판부는 "항공사는 규정에 따라 원하는 수수료율을 항공권 판매 관련 통합 정산 시스템에 제시할 뿐이고 결국 항공사의 티켓을 판매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행사다"며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발권 수수료가 사라진 이유가 단순히 IATA의 규정 때문으로 보기는 힘들다고도 밝혔다. 재판부는 "21세기로 들어서면서 항공권의 형태가 실물 항공권에서 전자 항공권으로 바뀌었고 발권 시스템도 상당히 간소화됐다"며 "이로 인해 항공권 판매 대행에 지출되는 비용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어드는 등 시장과 기술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발권 수수료율 폐지 경향을 단순히 이 사건 약관 조항으로 인한 결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IATA의 조항은 항공사들의 담합을 막기 위한 취지였지 여행사들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의도로 도입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여행사들이 항공사들이 제시한 발권 수수료율에 구속돼 계약 체결이 강제되는 것도 아니다"며 공정위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공정위는 상고장을 제출하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상고장과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상태다"며 "발권 수수료율을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후 통보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이를 여행사가 수락했기 때문에 선택권이 충분하다고 보는 것은 법적으로 불복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IATA에서는 한국 시장에만 예외를 둘 수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PSAA는 국제법이 아닌 자체 규정일 뿐이다"며 "자체 규정은 서비스가 이뤄지는 현지 법에 따라야 하는 것이 원칙이며 해당 약관 내용은 충분히 약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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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들은 IATA와 공정위의 분쟁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해당 판결이나 PSAA 조항에 대한 입장을 내기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이와는 별개로 발권대행 수수료를 이제 와서 여행사에 지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은 분명히 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이제는 여행 시 지류 티켓을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항공사 앱이나 SMS 탑승권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발권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에서 거기에 대한 보수를 여행사에 따로 지급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행위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행사 입장에서는 IATA 규정을 발단으로 수익에 반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에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정위와 IATA 간 갈등이 결론을 내지 못하는 사이 소비자들은 여전히 발권대행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전문가는 여행사의 발권대행 수수료 부과는 정당하지만 결국 소비자의 부담이 늘어난 측면도 있기 때문에 근본 문제인 PSAA 약관과 현재 진행 중인 법적 분쟁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여행사가 부과하는 발권대행 수수료는 소비자 입장에서 부당하고 주장하기는 힘들다"며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청구하는 것이며 금액도 과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기 때문이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발권대행 수수료율을 항공사가 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은 문제의 소지가 충분하다"며 "직관적으로 판단해도 항공사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인데 이에 대한 시정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법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전에는 내지 않던 발권대행 수수료를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 것인데, 결국 이는 IATA 측의 불공정한 약관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유의헤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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