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양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김상원 기자
여의도 한양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김상원 기자

"초격차 랜드마크 건설이라는 목표로 독보적인 실력을 통해 내 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총력을 다할 것" –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

"여의도 한양아파트의 성공이 곧 오티에르의 성공이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사의 역량을 집중할 계획" – 전중선 포스코이앤씨 사장

전날까지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가 무색하게도 햇볕이 따뜻했던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정중앙에 위치한 한양아파트 단지에는 정장 차림의 직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단지 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입주민인지 외부인인지 '매의 눈'처럼 살펴보던 그들은 입주민이라고 확인된 몇몇 사람들을 데려가 은밀하게 무엇인가를 전달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부의 분위기 치고는 생경한 느낌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이틀 뒤인 오는 23일 재건축사업의 시공사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5년 연속 도시정비사업 수주액 1위를 기록한 현대건설과 약 130억원 차이로 아쉽게 1위 자리를 놓친 포스코이앤씨가 한양아파트 재건축 수주를 두고 맞붙었다.  

'여의도 1호 재건축 사업'이라는 상징성, 도시정비사업 1, 2위를 다투고 있는 건설사들의 정면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각 건설사의 OS(홍보) 직원들의 홍보전은 마치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뉴스w>도 여의도 한양아파트 단지를 찾아 주민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단지에 걸린 홍보 현수막. 사진=김상원 기자
여의도 한양아파트 단지에 걸린 홍보 현수막. 사진=김상원 기자

단지 입구부터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의 홍보 현수막들이 곳곳에 보여 수주전의 열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8개동 588세대 규모로 지난 1975년 지어진 한양아파트는 말 그대로 노후 아파트로 지난 2017년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2018년 박원순 전 시장 당시 집값 상승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개발계획이 보류된 이후 사업 추진 속도가 느려졌다.  

지난 2021년 4월 오세훈 시장 취임 후에서야 재건축 규제 완화가 추진되면서 신속통합기획 대상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시의 제9차 도시계획위원회 신속통합기획 정비사업 등 수권분과위원회에서 여의도 한양아파트에 대한 재건축사업 정비계획 결정과 정비구역 지정안을 수정 가결했다. 

이 결정으로 한양아파트는 용적률 600% 이하, 최고 층수 56층 이하, 연도형 상가 등이 포함된 992세대의 주택단지로 거듭나게 된다.

여의도라는 금융 중심지에 인접하다는 점, 여의도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는 재건축사업이라는 점 등 여러 상징성 때문에 수주에 성공한다면 단순한 실적 수치 개선을 넘어 아파트 브랜드의 상당 부분 가치를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쪽부터)현대건설이 제안한 단지 조감도, 포스코이앤씨가 제안한 단지 조감도. 사진=각사 제공 
(위쪽부터)현대건설이 제안한 단지 조감도, 포스코이앤씨가 제안한 단지 조감도. 사진=각사 제공 

주민들을 매료하기 위해 양사는 경쟁적으로 '명품 단지'를 내세우며 사활을 걸었다.

현대건설은 단지명 '디에이치 여의도퍼스트'를 제안하며 하이엔드를 넘어선 '하이퍼엔드' 단지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한강 조망을 극대화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유명 리조트 조경에 특화된 디자인 그룹 등과 협업해 최고급 주거 시설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이 현장을 직접 찾아 "원가를 초과하더라도 최고의 품질과 소유주에게 제시한 개발 이익을 극대화한 사업 제안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포스코이앤씨도 하이엔드 브랜드 '오티에르'를 제안하며 여의도 내 최고층 빌딩이자 국내에서 세번째로 높은 '파크원'을 시공한 점을 내세웠다. 한양아파트도 56층의 고층으로 탈바꿈할 점을 강조하며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성이다.

인근 부동산에서 촬영한 여의도 내 단지 지도. 사진=김상원 기자
인근 부동산에서 촬영한 여의도 내 단지 지도. 사진=김상원 기자

경쟁적으로 낮은 공사비를 제시한 것도 눈에 띈다. 현대건설은 3.3㎡당 824만원, 포스코이앤씨는 798만원을 제안했다. 앞서 대우건설이 수주한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의 공사비가 3.3㎡당 1070만원으로 책정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단순 공사비만 비교하면 포스코이앤씨가 입주자 입장에서는 유리한 상황이다. 다만 현대건설은 동일 평형 입주 시 100% 환급, 일반 분양가 상승으로 인한 모든 이익 소유주에 귀속, 미분양 시 최초로 일반 분양가로 현대건설 대물인수 등 파격적인 금융 약정을 내걸었다.

포스코이앤씨도 일반분양으로 수입이 발생하면 소유주에게 환급금을 지급한 이후에 공사비를 받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총사업비 1조원도 책임조달하기로 했다. 시행사의 자금 부족이 발생하더라도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여의도 한양아파트에서 제안한 공사비 7020억원 대비 약 142% 규모의 자금을 책임 조달하겠다는 방침이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김상원 기자
여의도 한양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김상원 기자

시공사 선정 일정이 코 앞으로 다가온 만큼 단지 주변에서 예상하고 있는 승부처도 궁금했다. 인근에 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막상막하라 정말 예측이 안된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상담을 신청하는 소유주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이대가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은 포스코이앤씨, 중장년이나 노년 층은 현대건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의 경우 현대건설이 건설업을 오래 영위했고 오래전부터 ‘건설 명가’라는 이미지를 유지해 왔기에 호감도가 많은 것 같다"며 "젊은 층들은 포스코이앤씨 측이 제시한 건설비가 조금 더 저렴하다 보니 당장 부담해야 할 돈이 줄어들어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건설비가 저렴하다는 점이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여의도에서 처음으로 이뤄지는 재건축 사업인 만큼 첫 단지는 사회적인 브랜드 인지도와 시공 순위가 높은 건설사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사와 무관한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평가 순위나 브랜드 인지도가 현대건설에 비해 상당히 밀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포스코이앤씨가 수주에 성공하면 추후 있을 다른 단지를 '2군 건설사'들도 넘볼 것이며 이는 여의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높은 가치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보통 여의도에 위치한 아파트 소유자들은 재력이 뒷받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장의 공사비보다는 장기적으로 단지의 가치를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단지 내 게시판에 부착된 전체회의 관련 공고문. 사진=김상원 기자
단지 내 게시판에 부착된 전체회의 관련 공고문. 사진=김상원 기자

단지 내에서 활발하게 직원들이 밀착 홍보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었다. 현재 입주자들 대부분이 세입자이기 때문에 승부는 외부에서 거주하고 있는 소유주들에게 달렸다는 분석이다.

단지 인근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수치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재 한양아파트의 입주민들은 대다수가 세입자들이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아파트 가격이 굉장히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노후가 상당하기 때문에 샤워기에서 녹물이 나오고 주차도 여의치 않다"며 "소유주 입장에서 차라리 강남권 신축 아파트를 구매해 실거주를 하는 경우가 낫지 여기에 직접 살고 있는 경우는 이제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기자가 단지 내 입주자들에게 이번 수주전의 승패 예측에 대해 물어보자 단 한명만이 "어디를 선택할지 비밀로 하고 싶기 때문에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나머지 입주민들은 모두 "세입자이기 때문에 관심 없다"고 답했다. "어수선한 단지 내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승부는 단 이틀 뒤 결정된다. 오는 23일 오후 2시 여의도 하나증권빌딩에서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조합은 시공사를 결정할 예정이다. ‘여의도 제1호 재건축’이라는 명예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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