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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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 연초부터 불운(不運)의 기운이 은행권을 휘감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지속됐던 정부와 정치권의 '은행 때리기' 내성이 축적될 겨를도 없이 예상치 못한 돌발악재가 등장한 모습이다.

바로 '담보대출 짬짜미' 혐의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은행별로 많게는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내야할 처지에 놓인 것.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등의 거래 조건에 대한 '짬짜미' 행태, 즉 담합 혐의로 고강도 제재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4대 법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와 함께 검찰고발 의견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관련 담합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발송했으며, 이들 은행의 의견을 수렴한 뒤 제재 여부를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심사보고서는 각 은행들이 물건별 담보인정비율(LTV) 등 대출에 필요한 세부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고객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대출 조건이 설정되지 않도록 짬짜미를 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언듯 보면 은행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객들을 기망해 왔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심사보고서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유리한'이라는 판단이 자의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각 은행들은 하나의 담보 물건으로 여러 금융사에서 대출받는 것을 막기 위해 세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 은행별로 해당 물건에 대한 담보 평가를 진행하는데,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소지한 직원들이 이 업무를 수행 중이다. 통상적으로 주거용 담보물인 경우 시장 가격, 즉 시세가 정해져 있는데 반해 비주거용 담보물의 경우 명확한 시장 가격이 없어 감정평가사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제기한 짬짜미 대상도 비주거용 담보물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시장 가격이 없는 담보물인 경우 각 은행의 담당자들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감정평가를 진행한다. 지금처럼 부동산 침체기일 경우 LTV의 하한은 더욱 낮아진다. 담보물에 대한 고평가가 이뤄질 경우 부실채권 발생 위험을 고스란히 은행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용도별로 암묵적 가격 하한선이 형성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도 볼 수 있으며, 오히려 평가 가치가 들쑥날쑥이라면 감정평가사의 전문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더욱이 공정위가 제기한 혐의는 가계부채 과잉을 이유로 '대출 조이기'를 압박해온 금융당국의 행보와도 완전히 상반된다.  

사실 은행권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는 어느정도 예견돼 왔다. 이번 조사의 성격이 정부 시각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서민 생활 밀접 품목 불공정행위 집중 점검' 방침의 일환인 탓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초 은행권의 '독과점'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며 경쟁 촉진 방안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갑질', '종노릇' 등의 표현을 동원해 은행권을 압박해 왔다. 결국 이번 제재안은 두차례의 현장 조사 등 1년여의 걸친 공정위의 집중조사 끝에 나온 성과물인 셈이다. 

특히 이번 제재안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당초 조사 대상으로 지목된 '대출금리 담합' 의혹은 보고서에서 아예 빠졌다는 점이다.

앞서 공정위는 대동소이한 은행 예대금리차를 바로잡겠다며 지난 2016년 CD금리 담합 혐의로 주요 은행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바 있는데, 수년 간의 조사 결과는 결국 '빈손'이었다. 은행권의 사업 형태가 유사한 데 따른 것으로 '담합으로 의심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당시 결론이었다.

결국 공정위가 '자기면피' 차원에서 금리가 아닌 담보 짬짜미 조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2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안을 발표했던 은행권은 저마다 '상생금융'을 새해 경영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금융) 회장들 모두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정부가 내민 수천억원에 달하는 추가 청구서가 됐다. [뉴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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